Leftfield (레프트필드)
곡의 리듬파트를 구성하는 몇가지 요소 가운데 드럼의 위력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요즘 '귀'들은 멜로디에 현혹되어 매료된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특히 일렉트로닉의 관점에서 이 리듬은 멜로디라인보다 더 중요한 파트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양쪽의 완성도는 청자의 머리와 가슴을 자극하면서 한층 더 감미롭고 에너제틱(Energetic)한 사운드를 들려주게 된다. 일렉씬에서는 드물게 두 멤버 모두 전직 드러머로 구성된 레프트필드가 이 점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하지만 이들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팀중 하나로 데뷔앨범은 95년에 발표했지만, 첫인사는 최신작 [Rhythm And Stealth]로 하게 되었다.
2인 1조로 활동하는 일렉씬의 월드스타 중에서 케미컬 브라더스, 대프트 펑크, 에어 등을 제외한 (국내에서 거의 무명의 길을 걷고 있는) 레프트필드의 이력은 두장의 정규앨범과 싱글들, 각종 컴필레이션, 그리고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나 [쉘로우 그레이브(Shallow Grave)]와 같은 영화음악이 전부다. 지난 가을 발표된 [Rhythm And Stealth]가 이들의 정식데뷔 4년만에 이루어진 케이스라, 매니아들에겐 생경한 이슈거리는 못될 것이다. 그들에겐 다만 기다리고 기다렸던 레프트필드의 두 번째 앨범으로, 전작과의 비교분석에만 더 관심이 쏠리고 있으니까. (말나온 김에) 이들의 매력이 국내에 조금이나마 공개된 것은 영화의 힘이 컸다. 영화 [쉘로우 그레이브]에서 들려진 타이틀곡은 당시 다른 어떤 테크노음악과도 다른 차원의 매력적인 트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빠르게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시선에 맞춰 엠비언트와 하우스, 덥의 진행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영화음악 앨범을 사고싶어도 못사는 처지가 되었으므로 비디오를 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마치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것처럼 색다른 재미와 서스펜스를 누릴 것이다.
각설하고 좀더 자세한 멤버들의 프로필을 알아보기로 하자. 폴 데일리(Paul Daley)는 마개이트(Margate)라는 곳에서 성장했다. 드러머였던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이미 8살 때부터 스틱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펑크밴드에서 활동했던 폴이 처음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에 도취된 계기는 83년, 파티에서 DJ들이 사용하던 드럼머신 때문이었다. 리얼 드럼이 아닌 드럼사운드의 루핑만으로 그루브를 뿜어내는 기계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퍼커션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레이블, 하드 핸즈(Hard Hands)에서도 알 수 있는데, 이 이름은 60년대 살사리듬의 타악기 전문가였던 레이 바레토(Ray Barretto)의 히트곡에서 따온 것이다. 소년시절 그가 자주 다닌 클럽은 미국 흑인음악의 영향을 받아 유행하던 소울풍의 음악을 연주하던 곳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런던에서 유행하던 펑크와 디스코, 소울이 뒤섞인 댄스플로어용 신스팝들이 폴이 사는 마개이트까지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펑크로커였던 폴은 런던으로 향했고 애시드 재즈와 레어 그루브씬에서 퍼쿠셔니스트로 기반을 쌓아갔다.
그리고 운명적인 레프트필드의 반쪽 날개 닐 반스(Neil Barnes)와의 만남은 클럽 바이올렛(Violet)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은 런던 소호 거리에 있는 재즈바이다. 콩가리듬의 애시드재즈를 선보였던 밴드 아담이라 불리우는 남자(A Man Called Adam)에서 열심히 북을 두들기던 폴의 모습이 닐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닐도 폴처럼 몇 년 동안 콩가를 배우고 있던 참이라 둘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닐은 런던의 아일링턴(Islington)에서 성장했다. 대부분의 펑크(Punk)맨들이 새로운 사운드의 실험적 텍스트로 갖가지 사운드를 찾았던 것처럼, 그도 마찬가지로 레게와 덥의 깊은 맛(?)에 동요되기 시작했다. 80년대 초,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공연을 봤을 때 닐의 궁금증은 단지 그들이 어떤 드럼을 사용했을까란 의문이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로는 Linn Drum이라고) 크라프트베르크에서 레게에 이르는 그의 열정은 훗날 폴과의 인연의 고리를 쉽게 만든 열쇠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 폴과 닐은 레프트필드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싱글작업에 들어갔다. 테크놀로지만이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닐은 비트와 영화샘플용 'Not Forgotten'을 만들었다. 폴은 나중에 이 곡을 다시 리믹스하여 두 번째 싱글 'More Than I Know'의 B-Side 곡으로 수록했다. 리믹스는 원곡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어냈고 영국을 대표하는 댄스곡이 되었다. 이 두명의 쿨가이들이 리믹스한 제품(?)들이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명성을 얻어내자 그들의 우상,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Jump They Say'를 리믹스하는 행운을 잡기도 했다. 보위는 레프트필드가 만든 자신의 리믹스버전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격찬하기까지 했다.
이같은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자신감을 억게 된 폴과 닐. 그들은 95년 [Leftism]이라는 앨범을 내놓았고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라는 서브장르를 만들었다. 한마디로 하우스를 바탕으로 브레이크 비트, 레게와 아프리카 리듬, 덥을 혼합하여 잘 섞어놓은 하이브리드(Hybrid) 기법으로 농축가공된 음악이다. 이도저도 헷갈리면 국내공개작인 동시에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업그레이드인 [Rhythm And Stealth]를 들어보면 느낄 수 있으리라. 레게 리듬의 변형과 흑인 랩퍼의 트라이벌한 창법, 코미디 프로그램인 '사바나의 아침'으로 익숙한 '밤바야'의 분위기가 유기적인 기계에서 재창조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