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 Donaldson (루 도날드슨) 루 도날드슨(Lou Donaldson)은 Charlie Parker의 영향을 많이 받은 뛰어난 `밥` 알토 색스폰주자이다. 그러나 실은 불루스에 바탕을 둔 그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의 독특한 음색은 다양한 소규모 그룹 작품에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수년동안 들을 만하고 생기있는 작품을 많이 녹음하였다. 1926년 11월 1일 노스 캐롤라이나주 바딘에서 태어난 도날드슨은 15살 때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바로 알토로 바꾸었다. 대학 졸업 후 군에 들어가 해군 군악대에서 활동하였다. 1950년대 초 뉴욕으로 진출한 그는 블루 노트 레이블에서 밀트 잭슨, 셀로니오스 몽크, 클리포드 브라운 등과 레코딩하는 기회를 가져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주위로부터 차세대를 이끌어갈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다. 1952년 블루 노트에서 리더로서 녹음하기 시작한 도날드슨은 앨범 [New Faces, New Sounds]을 공개하여 새로운 사운드를 표출하였다. 나이 25살에 그의 연주 스타일은 완전히 틀이 잡혔다. 비록 아직은 몇 년 더 성장해야 하겠지만 도날드슨은 자신의 음악을 이미 찾아냈다. 1953년 그는 앨범 [New Face, New Sounds II], 그리고 클리포드 브라운 등과 함께 연주한 조이트 앨범 [Lou Donaldson With Clifford Brown]을 발표하여 절제된 연주력을 선보여 평론가와 재즈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게된다. 1954년 그는 Blue Note가 거의 다 녹음해두는 Art Blakey, Clifford Brown, Horace Silver, Tommy Potter 등이 출연하는 밤무대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Art Blakey와 공연을 가진 후 명반 [A Night At Birdland]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한다. 얼마 안있어 자신의 캄보를 결성한 그는 정열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지미 스미스의 블루 노트 세션에 다수 참가하여 출중한 연주력을 발휘하였다. 그 후 195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가끔 Thelonious Monk, Milt Jackson, Jimmy Smith 등과 함께 밴드 리더로 활약하여 왔다. 도날드슨의 초기 블루 노트 레코드는 순수한 `밥`이였다. 1958년 그는 종종 콘가 연주자를 활용하여 왔고, 1961년 그의 밴드는 피아노보다도 올겐을 더 선호하였다. 도날드슨의 불우지한 스타일은 소울 재즈로 쉽게 바뀔수 있었다. 그런 정황에서 보면 그는 창작품을 연주한 것이다. 1952-63년 그의 Blue Note와의 결합은 1963-66년 Cadet와 Argo에서 만든 우수한 작품으로 이어져 나갔다. 1960,70년대에 그는 오스카 피터슨의 피아노 연주를 백 사운드로 소울풀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하였다. 1967년에 도날드슨은 불루 노트로 돌아 와서 상업적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잠시동안 그는 전자 바리톤 색스폰을 사용하여 완전히 그의 음악을 망쳐 놓았다. 1967년 [Alligator Boogaloo]의 성공으로 이보다 못한 일련의 펑크 음악을 녹음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계획하여 그의 음악적 재능에 걸맞지 않았다. 1970년대 말부터 언더그라운드 스타일로 돌아간 그는 1980년대에 레드 갈란드 트리오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81년 도날드슨은 그의 예술성을 되찾아 Muse, Timeless, Milestone 등에서 녹음한 후속 소울 재즈와 하드 밥은 제자리를 제대로 찾아 올겐과 피아노 주자와 공히 상호작용하면서 최고의 연주를 펼쳤다. 그리고 그의 연주 스타일이 영구불멸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