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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6 21:25
Loggins & Messina (로긴스 & 메시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80  



Loggins & Messina (로긴스 & 메시나)
 

 
로긴스 앤 메시나는 올드록과 포크, 컨트리 록을 혼합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밴드로 70년대 중반 가장 사랑 받는 밴드 중에 하나였다. 밴드 해산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전에 작곡해 놓은 원곡들이(대부분이 케니 로긴스나 짐 메시나 두 멤버에 의해서 작곡되었으나 몇 개는 나머지 멤버오 다른 친구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끔 다른 아티스트에 의해서 녹음되거나 재발매되는 경우도 있었다. 로긴스는 포크와 록적인 배경을 가진 반면 메시나는 컨트리와 록에 그의 음악적 뿌리를 두고 있었다.

메시나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가족과 함께 텍사스로 이주하였다. 론 스타 스테이트(Lone Star State)에 사는 동안 그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5∼10살 사이에 텔레비전에서 많은 뮤지션들의 연주를 보았다. 그들의 연주를 보면서 코드를 배웠고, 그 때 나는 내가 진심으로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
그가 들은 대부분의 음악은 컨트리 앤 웨스턴 스타일로 포코(Poco)와 론긴스 앤 메시나와 함께 한 작업에서 이런 흔적을 알 수 있다. 특히 로긴스와 듀엣으로 녹음한 첫 번째 앨범에서 메시나가 알 가스(Al Garth)와 함께 작곡한 'Listen To A Country Song'에서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메시나의 가족이 로스앤젤레스 해안 지역인 맨해튼 비치로 이주했을 때 12살의 짐은 록을 알게 되었다. 13세에 그는 첫 번째 록 밴드에 가입했고 캘리포니아 컬톤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동안 전문적으로 연주활동을 벌인다. 졸업 후 그는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동시에 레코딩 세션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그는 Harmony Recorders, Audio Arts, Wally Heider, Sunset Sound 등과 같은 로스앤젤레스의 여러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 활동을 했다.

67년에는 전설적인 밴드인 버팔로 스프링필드(Buffalo Springfild)에 가입하기를 제안받았으나 이미 그 때는 밴드의 해산이 임박하던 시점이어서 잠깐동안 참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곡 가운데 하나인 'The Herd'가 수록된 밴드의 마지막 앨범인 [Last Time Around]를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버팔로 스프링필드가 해산된 이후 그는 리치 퓨레이(Richie Furay)와 함께 컨트리와 록에 뿌리를 둔 새로운 밴드인 포코(Poco)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메시나는 포코와 함께 몇 년간 활동하다가 케니 로긴스와 함께 일하기로 결심하고 71년 공식적으로 밴드를 탈퇴했다.

둘은 처음부터 함께 활동할 계획은 아니었다. 로긴스는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솔로 아티스트로 계약을 맺었고, 자신의 밴드 뿐 아니라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계속 프로듀스하고 있었던 메시나는 로긴스의 앨범을 프로듀스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 로긴스와 메시나가 작업을 함께 했을 때 그들은 서로 뮤지션으로서도 사이가 좋았으며 서로가 작곡한 곡들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그들은 세션을 계속 하면서 혼 연주자인 알 하트(Al Hirth)와 존 클락(John Clarke), 키보드에 마이클 오마션(Michael Omartion), 베이스에 래리 심즈(Larry Sims)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밴드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72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트라우바다우어(Troubadour)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는데, 당시 이 클럽에서는 오프닝 연주사이 몇 분 동안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로긴스와 레시나에게 결정적인 기회였다. 청중들은 그들의 노래와 연주를 좋아했고 본 공연에 버금가는 반응을 보였다. 로긴스와 메시나의 공동 프로젝트 앨범이 계속 완성됨에 따라 그들은 함께 작업하기로 결심한다. 첫 번째 앨범인 [Kenny Loggins With Jim Messina Sittin' In'(72)은 처음부터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72년 중반부터 73년까지 꾸준히 사랑 받았다. 여기에 수록된 여러 곡들은 곧 그들 공연의 주요 아이템이 되었다. 이 앨범에는 로긴스 작곡의 'Danny's Song'과 'House At Pooh Corner'가 있었고, 메시나 작곡의 'Peace Of Mind'와 'Vahe Vala'(케니의 형제인 댄(Dan)과 돈 로터모저(Don Lottermoser)와 함께 작곡한 곡이다.)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인 [Loggins And Messina](72)도 역시 크게 성공하여 플래티넘이 되었다. Top 10에 올랐던 'Your Mama Don't Dance'는 72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최우수 노래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같은 달 그들은 또 다른 싱글 'Thinking Of You'를 차트 상위에 올려 놓고 계속해서 또 다른 히트곡 'Ain't Gonna Change My Music'을 차트에 등장시킨다. 73년 초와 74년 말 사이 콜롬비아 레코드는 세 장의 골드앨범인 [Fall Sail], 라이브앨범 [On Stage], [Mother Lode]를 발매한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창조적인 열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 다음 앨범인 [So Fine](75)과 골드앨범인 [Native Son](76)은 흥미 있는 곡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초기에 발매되었던 것들만큼 번뜩이는 재치는 없었다.

케니 로긴스 역시 솔로 활동을 다시 하기를 원했기에 76년 말이 되기 전에 밴드는 해산하였다. 콜롬비아사는 그들의 베스트 앨범인 [The Best Of Friends]를 같은 해에 발매하였고, 후에 또 다른 형식의 회고앨범인 [Finale]를 발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