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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6 20:50
Les Paul (레스 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21  



Les Paul (레스 폴)
 


 
“내 이름을 딴 기타가 현재 전 세계로 퍼져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애용하고 있음에도 난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분할 때가 많다. 그러한 열정이 나를 젊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일렉트릭 기타발전의 산 증인인 레스 폴은 1923년 6월 9일 미국 위스컨신 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 및 주변 전기장비 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40년 시카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뮤직 디렉터로 일하며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한편 빙 크로스비 등과 레코딩 작업을 하며 당시의 스타들의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명사로 부각되었다.

얼마 후 레스 폴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해 자신이 직접 스튜디오를 차려 새로운 사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는 얼마안가 레코딩 기술 및 일렉트릭 기타 발전에 획기적인 장을 여는 것들을 다량으로 선보이게 된다. 오늘날의 보컬용 마이크를 비롯해 멀티트랙 녹음기술, 패이징(Phasing), 갖가지 에코 이펙트 등이 모두 이때 나타났던 것이다.

48년에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멀티트랙 녹음작 'Lover'를 발표해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이러한 행복한 나날들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해 중단되고 만다. 1년 후에야 레스 폴은 건강한 몸으로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었다.

49년 레스폴은 Gene Autry Band에서 활동하던 여성싱어 매리 포드(Mary Ford)와 결혼하였다. 당시 이들은 함께 녹음작업을 하며 가까워 졌는데 이후 결혼해서도 매리는 레스 폴의 변함없는 음악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레스 폴의 기타반주와 매리의 보컬이 함께 하는 이들 듀오는 'Vaya Con Dios', 'How High The Moon', 'The World Is Waiting For The Sunrise'같은 빅 히트곡들을 터트리며 당시 최고의 스타중의 하나로 대접받았다.

음악활동 이외에도 레스 폴은 평소 관심을 갖던 솔리드 바디형 기타에 대한 몰두로 밤잠을 설치곤 했는데, 이러한 그의 연구는 52년 대 기타 메이커인 깁슨사와 공동작업을 하기로 계약함으로서 결실을 맺기에 이른다. 깁슨사에서 일하는 52년부터 레스폴은 역사적인 일렉트릭 기타 명기들을 연도별로 꾸준히 만들어 전 세계의 기타리스트들을 흥분에 떨게 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깁슨 레스폴 몇 년도 모델’ 등등의 명칭은 모두 그가 만든 악기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기타 연구가 및 레코딩 엔지니어 그리고 사운드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그이지만 실은 그에 앞서 명 재즈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50∼60년대에 발표했던 그의 음반들에 담긴 기타연주는 매우 감미로우면서도 프레이즈가 맛이 있다. 통통 튀는 듯한 가벼움과 영롱함이 깃든 그의 연주는 그 때문에 부드러움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기타라는 악기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를 가진 그이기에 연주의 대부분은 기교를 앞세운다기보다 기타음색과 달콤한 멜로디라인, 그리고 쉽게 와 닿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현재까지도 그는 뉴욕의 링컨센터 근처에 있는 이리듐이라는 재즈클럽에서 주마다 한번씩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