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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6 20:54
Levellers (레벨러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29  



Levellers (레벨러스)
 


 
록그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바이얼린과 만돌린이라는 기악 편성으로 포크색 짙은 격렬한 록 사운드와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펑크적 태도를 갖춘 레벨러스는 영국 내전(English Civil War)이 발발했던 1647년에서 1649년까지 약 3년 동안 공화 정치와 숭배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활동했던 청교도인들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1988년 '레벨러스(평등주의자)'를 자신들의 그룹명으로 택하여 록계에 데뷔하게 된다.

같은 해 5월, 매니저인 필 넬슨(Phil Nelson) 소유의 인디 레이블인 해그(Hag)에서 라이브 실활 미니 앨범인 [Carry Me]를 발매한 후 영국 순회 공연길에 오른 레벨러스는 투어 중 밴드를 탈퇴한 세컨드 기타리스트의 후임으로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는 앨런 마일스(Alan Miles)를 영입하고 이에 밴드는 작곡과 보컬, 그리고 리드 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마크 채드윅(Mark Chadwick)을 주축으로 바이얼리니스트 존 세빈크(Jon Sevink)와 베이시스트 제레미 커닝햄(Jeremy Cunningham), 그리고 드러머 찰리 헤더(Charlie Heather)라는 5인조 라인업으로 정착하게 된다.

같은 해 10월에 발매된 또 한 장의 미니 앨범 [Outside Inside] 등 그 동안 밴드가 발매했던 두 장의 EP가 가져다 준 성공 덕에 1989년 프랑스 레이블인 뮤지디스크(Musidisc)와 계약을 체결한 레벨러스는 워터보이스(Waterboys)의 앨범을 제작했던 필 테넌트(Phil Tennant)를 프로듀서로 맞아들여 1990년 밴드의 정식 데뷔작인 [A Weapon Called The World]를 발매하게 된다.

하지만 데뷔 앨범 [A Weapon Called The World] 홍보 차 벨기에 순회 공연에 오른 레벨러스는 또 다시 기타리스트 앨런이 밴드를 탈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레미가 사고를 당해 당분간 한 팔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재난이 이어지는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밴드에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사이먼 프렌드(Simon Friend)라는 기타리스트였다. 싱어 송라이터로 몇 곡의 자작곡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단기간에 밴드와 호흡을 맞추는 순발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레벨러스의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는데 커다란 수훈을 세우며 레벨러스의 제5의 멤버로 자리하게 된다.

새로운 레이블인 차이나(China)로 이적한 레벨러스는 1992년 두 곡의 싱글 'One Way'와 'Far From Home'을 히트시키며 지금까지도 밴드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고 있는 두 번째 앨범이자 차이나 레이블에서의 데뷔작인 [Levelling The Land]를 발매하게 되는데 영국과 켈틱의 포크 사운드를 적절하게 배합한 이 앨범의 성공은 미국 레이블인 일렉트라(Elektra)와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결국 레벨러스는 대망의 미국 진출길에 오르게 된다.

이어 밴드는 1993년에 몇 개의 싱글과 b-side 트랙, 그리고 라이브 실황 등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See Nothing, Hear Nothing, Do Something]을 발매하고 같은 해에 셀프 타이틀 4집 앨범 [Levellers]를 선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평론가들과 팬들에게서 그리 후한 점수를 얻어내지 못한 채 음악팬들의 기억 속에서 이내 사라져 버린다.

새로운 EP [Julie]를 발매하고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 그리고 미드나잇 오일(Midnight Oil)과 함께 미국에서 워매드 투어(Womad Tour : 피터 게이브리얼 자신이 정기적으로 주재하여 실시하는 월드 뮤직 성향의 옴니버스 뮤지션 투어)를 가진 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 참가하며 지난 94년을 마감한 레벨러스가 새로운 신보 소식을 들고 팬들에게 돌아온 것은 95년 8월이었다.

'크리미널 저스티스 액트(Criminal Justice Act : 허가받지 못한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신속하고 조용한 체포를 위해 시민권을 박탈할 수 있게끔 경찰력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법)를 반대하는 밴드의 정책적인 중심지로, 그들의 리허설 스튜디오와 매니지먼트, 그리고 팬클럽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레벨러스의 HQ 하우스에 자리잡고 있는 밴드의 멧웨이(Metway) 스튜디오에서 느긋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제작했다는 앨범 [Zeitgeist]는 레벨러스의 최고 성공작으로 꼽히는 2집 앨범 [Levelling The Land]를 제작했던 앨 스콧(Al Scott)을 프로듀서로 영입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셀프 타이틀 전작이 거두었던 저조한 성과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밴드의 무궁무진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레벨러스는 이 작품을 위해 6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제작을 마쳤던 다른 음반들과는 달리 최상의 사운드를 얻어내기 위해 9개월이란 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앨범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