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a Branigan (로라 브래니건)
1980년대를 화려히 장식한 여가수 로라 브래니건(Laura Branigan)은 뒤에 등장한 머라이어 캐리나 셀린 디온과 같은 디바들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활동 당시나 지금이나 평가 절하된 불운의 가수라고 할 것이다. 4옥타브의 음역에 파워풀한 가창력을 선사했으나 대표곡 'Gloria'가 댄스가수로의 이미지를 굳히는 바람에 롱런의 길을 트지 못하고 단명하고 말았다.
아일랜드계 집안 출신으로 뮤지컬 스타가 되기 위해 연극 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캐나다 출신의 음유시인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의 순회공연(1977년)에 가담하여 백업싱어로 활약을 하면서 진로는 대중가수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매니저 시드 번스타인을 만나게 되고 그가 어틀랜틱 레코드사와의 오디션을 주선해 주면서 로라 브래니건은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을 했고 1982년 데뷔앨범 <Branigan>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앨범에선 칸초네를 영어로 번역한 'Gloria'(전미 싱글차트 2위)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줘 레코드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이 곡은 당시 국내에서 TV 라디오를 가리지 않고 무수한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사용되었다.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Branigan2>은 'Solitaire'(7위)로 'Gloria'의 영광을 재현했고,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이 쓴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는 나중 빅히트한 마이클의 오리지날보다는 인기 면에선 덜했지만 심플하면서도 절묘한 감정이입을 과시했다.
1984년 발표한 3집 <Self Control>은 유로 댄스의 상업화를 꾀한 앨범으로 플래티넘 고지에 등극했으며 록 비트가 가미된 타이틀곡이 4위까지 오르며 'Gloria'에 못지 않게 애청되었다. 또한 전형적인 그녀만의 스타일을 느끼게 하는 'The lucky one'(20위)이 후속으로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는 캐롤 킹(Carole King)의 우아한 고전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도 브래니건화되어 수록되어 있다.
1985년 전작의 영광을 이어가려는 새 앨범 <Hold Me>를 들고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온 그녀는 Spanish eddie(40위)의 평범한 히트에 만족해야 했다. 독일출신 그룹 알파빌레(Alphaville)의 84년 히트곡 'Forever young'과 마이클 볼튼의 곡으로 세어(Cher)가 후에 톱10에 진입시킨 'I Found someone' 등이 주목을 받았으나 서서히 그녀의 음악적 패턴에 식상한 팬들이 늘어났다.
2년 뒤 발매된 새 앨범 <Touch>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해 어덜트 컨템포러리 계열의 발라드 곡들을 대폭적으로 수용하여, 'The power of love'(26위)에선 오리지널 제니퍼 러쉬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했다(바로 셀린 디온이 리메이크해 빅히트시킨 곡이다). 그로부터 3년 간의 휴식(이때 그녀는 프레 올림픽 행사차 국내 내한하여 공연을 가진바 있다)를 마치고 1990년엔 <Laura Branigan>, 1993년 <Over My Heart>을 연속 발표하며 비교적 꾸준히 활동해왔으나 인기는 이미 퇴조한 상태였다.
1995년 베스트 앨범 <The Best Of Branigan>을 끝으로 이렇다 할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 그녀는 2004년 사망하였다. 10년 남짓한 활동이었으나 시원시원한 그녀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했고, 그녀의 활동이 셀린 디온과 같은 걸출한 스타의 탄생에 초석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