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Orme (레 오르메)
Mestre 출신으로 화학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자 했었던, 그러나그 희망을 이루지 못했던 Toni Pagliuca, 베네치아의 명물 산데리어를 만들기 보다는 음악을 선택했던, Murano출신의 유리가게 주인 아들인 Aldo Tagliapietra, 목수출신으로 Michi라고 불리줬던 Burano출신의Giuseppe Dei Rossi등이 LeOrme의 결성 멤버들이다. 그들은 이태리 팝 음악의 역사에 커다랗고 뚜렷한 혼적을 남겨 놓았던 후기 Beat의 계열이다. Le Orme는1970년대 그룹들 중에서 항상 첫번째 대열에 위치해 있었다. 그들이 무명 그룹이었던 1960년대 말에는 Beat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New Trolls와 Formula 3의 시대가 도래했고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태리에 Progressive Rock시대가Le Orme의 앨범 "Collage"와 더불어 비롯된다. 낭만적이고 어떻게 보면 영국의EL & P를 모방하는 듯한 그들의 음악은 새로운 감각에 대한 이태리식의 음악적 답변이었다. Pagliuca의 흥분된 건반을 중심으로 이태리 서민의 춤곡에서 영감을 얻은 Le Orme는 본질적이고 체계적인 연주기법과 더불어 Progressive Rock 태동의 기간이었던 70년대초에 이태리 감각에맞는, 세련된 귀족적인 음악적 소제들을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Beat(1967년)시대로부터 비롯된다. 베이시스트이자 싱어인 Aldo Tagliapietra가 리더로써Toni Pagliuca와 Michi Dei Rossi를 받아드려 "Opoppi"라는 작은 그룹을 조직했다. Toni는 Mestre의 San Marco지역의 가까운 카톨릭 교회에서 올겐을 연주하게 될 때까지, 소년기 동안 장난감용 피아노를 가지고 건반을 마스터했던 인물이었다. Toni는 올겐에 대한 정열로 가득차있었다. 그는 Le Orme에 가입 하자마자Milano로 달려가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비용으로 하몬드 오르간을 구입했다. 그룹에는 Claudio Galieti와 Nino Smeraldi가 가입되어 5인조 편성의 그룹이 되었고 이들은 Le Orme의 첫 노래를 공동 제작했다. Michi의 병역기간 동안 드럼에는 영국 출신의 Dave Baker가 잠시 기용되었다. 그리고 Car Juke Box레코드사로부터 그들의 데뷰싱글 'Senti L'Estate che Toma'가 1968년 여름에 발표된다. 당시 미국 West Coast의 Psychedelic Movements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들의 데뷰싱글은 고음의 노이즈로 시작되는 화음과 보컬을 중시한 작품이었다. 그들은 1968년 Milano로 진출하여"Ad Gloriam"이라고 불리우는 첫 앨범을 발표한다. 'Fumo', 'Mita Mita', 'L'aurora'등의 노래가 이 음반에 담겨 있었다. 이 앨범이 발표될 당시, Le Orme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이 시기까지 Le Orme는 5인조였다. 1960년대말 미국 그룹의 앨범커버를 닮은 그들 데류앨범에 담긴 그룹멤버들의사진을 보지 않고서는 그들이 5인조그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없다. 그후, Nino Smeraldi(Guitar, Vocal)와 Claudio Galieti(Bass, Cello)가 그룹을 탈퇴하면서 Le Orme는 단순한 편성의 3인조로 탈바꿈한다. 1970년, 축소된 인원으로 Le Orme는 "여름축제"무대위에 올랐고 같은해 두번째 앨범 "L'Aurora Delle Orme"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데뷰앨범의 곡들과 초창기 싱글들을 모아 놓은 한정 발매 편집음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