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z Phair (리즈 페어)
1967년 코네티컷의 뉴 헤븐에서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입양되어 시카고 근교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다소 뇌쇄적이고도 날카로운 비범한 외모를 가진 리즈 페어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로 파이 사이키델릭 포크 록이라고 할 수 있다.
리즈 페어는 1980년대 후반의 미국 언더그라운드 영향을 받으며 고전적인 싱어 송라이터의 감각과 구조 속에서 로 파이, 인디 록의 작업 방식과 스타일들을 혼합하여 집에서 직접 제작한 데모 < Girlysound >로 주목을 받았다.
곧 마타도어 레코드에서 데뷔한 리즈 페어의 음악은 그야말로 로 파이의 진수라 할만한 조악한 음질과 대담하고 거침없는 사운드와 사이키델릭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사운드에 노래라기보다 나레이션에 가까운 그녀의 보컬이 담긴 음악들은 '글쎄, 뭔가 잘한다'라는 느낌보다는 '이 여자 한가닥하네'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또한 노래나 연주에서 오버하는 듯한 어색함 없이 대담한 가사들을 무미건조하면서도 매우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척척 불러 젖히는 리즈 페어의 음악에는 절제된 자연스러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데뷔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고 이후 몇 년간 그녀의 음악 스타일은 많은 미국의 싱어 송라이터 여성 가수들의 표본이 되었지만, 대대적인 홍보 속에서 발매된 2집 앨범은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긴 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그다지 커다란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파괴적이고 퇴폐적인 사운드에서 펑크적인 기타 사운드로의 전환을 거쳐 1998년에는 명실공히 로 파이 음악의 총아가 된 벡과 혼합된 듯한 컨트리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강세였던 여성들의 음악에 비해서 리즈의 보컬은 여전히 노래를 잘한다는 차원보다는 고운 목소리, 가성이나 비음으로 가사를 전달하는 여타 여성 보컬들보다 강력한 전달력을 가진다는 점과 그 메시지의 진솔하고 높은 강도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멜로디보다도 그 노골적이고 당찬 가사로 이슈를 몰고 왔던 그녀의 음악을 비 영어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해한다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냥 읊조리듯 가사를 웅얼대다가 후렴구에서야 멜로디를 갖춘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그렇고.
그런 여러 가지 부분에서 리즈 페어는 많지 않은 진지한 싱어 송라이터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포크 음악인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여성 가수들이 듣기 좋은 보컬을 구사하는 데 반해 그녀는 듣기 좋은 보컬보다는 저음의 나레이션 같은 형식을 택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포크 음악들이 그렇듯 간단하고 귀에 착 달라붙는 멜로디 훅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음악 속에서도 때로는 몸을 들썩이게 할 줄도 아는 리드미컬함을 지닌 그녀의 음악은 1990년대 중반의 두드러진 인디 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