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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6 21:44
Lynyrd Skynyrd (레너드 스키너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0  



Lynyrd Skynyrd (레너드 스키너드)

 


올맨 브라더스(Allman Brothers)와 함께 서던 록(Southern rock)의 양대 봉우리로 1970년대 록 토양을 한층 기름지게 했던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는 그들이 오선지 위에 창조한 수많은 고전들과 함께 그 비극적인 종말로 인해 우리에게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되는 그룹이다.

1973년에 처녀작을 발표한지 4년만인 1977년에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로 핵심 멤버 3명을 동시에 하늘 나라로 먼저 보내면서 생명 연장의 꿈을 접어야 했던 레너드 스키너드의 음악은 그러나 서던 록을 창시한 올맨 브라더스의 그것과는 차별되는 자신들만의 독창적 스타일이었다. 올맨 형제들의 음악에는 컨트리, 블루스, 하드록 외에도 공연장에서 연주되는 재즈적인 즉흥 연주가 인상을 깊게 드리운 반면, 레너드 스키너드는 하드록에 좀 더 비중을 두어 육중한 사운드 풍광을 담아냈다(리드 기타리스트가 무려 3명이었다!).

1960년대 중반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로니 반 잔트(Ronnie Van Zant/보컬), 알렌 콜린스(Allen Collins/기타), 게리 로싱턴(Gary Rossington/기타)이 뜻을 모아 조직한 마이 백야드(My Backyard)가 레너드 스키너드의 모체(母體)였다. 곧이어 에드 킹(Ed King/기타), 레온 윌크슨(Leon Wilkeson/베이스), 빌리 파웰(Billy Powell/키보드), 그리고 밥 번스(Bob Burns/드럼)를 영입한 후 장발의 남학생들만을 골라 괴롭혔던(?)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의 이름 레너드 스키너(Leonard Skinner)를 감히 변형해 자신들의 그룹 이름으로 정했다(이들도 그 교사의 희생자였을 듯 싶은데 나중 성공한 제자들과 선생은 감격의 재회를 했다).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명성이 달아오르자 재즈 록 밴드 블러드 스웻 & 티어스(Blood Sweat & Tears)의 리더였던 알 쿠퍼(Al Kooper)가 적극적인 후원에 나섰고 1973년 대망의 데뷔 앨범이 공개되었다. 첫 음반의 제목 <Pronounced Leh-Nerd Skin-Nerd>의 뜻은 '레너드 스키너드로 발음해달라'였다. 이름이 미국인들에게도 꽤 어려웠기 때문에 본인들이 앞장서서 친절하게 발음을 시범한 셈이다.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전설이 된 서던 록의 창시자 듀안 올맨(Duane Allman)에게 바치는 영원한 고전 'Freebird(19위)', 어머니가 충고하신 인생의 가르침을 가사로 읊은 감동적인 'Simple man', 국내 매니아들이 애청했던 'Tuesday's gone'과 같은 보석들이 수록된 이 한 장의 음반으로 레너드 스키너드는 일약 미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도약했다. 특히 'Simple man'의 기타 인트로 연주는 스콜피온스(Scorpions)가 1979년에 발표한 'Always somewhere'와 너무나 흡사해 혼동을 초래했고, 1977년에는 라이브 버전으로 다시 한번 히트 차트에 등록되어 38위를 기록한 바 있다.

1988년 혼성 댄스팝 듀오 윌 투 파워(Will to Power)는 'Freebird'와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의 'Baby, I love your way'를 이음새 없이 자연스럽게 메들리로 엮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Freebird'가 미국인들에겐 부정할 수 없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음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1집의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1974년에 내놓은 두 번째 작품 <Second Helping>에서는 그 유명한 남부의 찬가 'Sweet home Alabama(8위)'가 들어있다. 록의 거목 닐 영(Neil Young)이 1972년에 발표한 남부사람들의 보수적 기질을 질타한 곡 'Southern man'에 대한 응분의 답가로 남부인의 열창이 뒤따랐다. 이 곡은 니콜라스 케이스가 주연한 영화 <콘에어>에서 비행기를 탈취한 탈옥수들이 비행기 안에서 신나게 춤추며 즐길 때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는 등 수많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면서 대중의 뇌리에 호방하고 뚝배기 같은 미국 남부의 정서를 심어주었다.

이 음반 이후 드러머 밥 번스는 아티머스 파일(Artimus Pyle)로 교체되었고 기타리스트 에드 킹은 밴드를 떠났다. 그리하여 6인조로 재정비 된 레너드 스키너드는 1975년의 <Nuthin' Fancy>에서 'Saturday night special(27위)'를 싱글 커트시켜 앨범 차트 10위권 안에 들었지만 전체적인 음반 평은 전작들을 상회하지 못했다.

1976년에 나온 두 장 짜리 실황 앨범 <One More From The Road>부터 레너드의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합세한 스티브 게인스(Steve Gaines)와 백업 보컬리스트로 고용된 그의 여동생 캐시 게인스(Cassie Gaines)와 함께 다섯 번째 정규 음반 <Street Survivors>의 제작에 착수했다. 'What's your name?(13위)'과 'You got that right(69위)', 그리고 이 음반의 하이라이트 'That smell'이 들어있는 이 작품이 공개된 지 3일 후인 1977년 10월 17일, 이들이 탄 비행기는 연료 부족으로 추락해 팀의 리더 로니 반 잔트와 스티브 게인스, 그리고 캐시 게인스가 사망했고 나머지 식구들도 중상을 입었다.

1980년대 들어서 생존 멤버인 게리 로싱턴과 알렌 콜린스는 로싱턴 콜린스 밴드(Rossington Collins Band)를 결성했고, 아티머스 파일은 아티머스 파일 밴드(Artimus Pyle Band)를 구성했으며 로니 반 잰트의 동생 도니 반 잰트(Donnie Van Zant)는 38 스페셜(38 Special)을 조직해 삼인삼색(三人三色)으로 서던 록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원년 멤버 알렌 콜린스는 자동차 사고의 후유증으로 1990년에 이승을 달리 해 '자유로운 새'가 된 고향 친구 로니와 재회했고 다른 친구들은 먼저 간 그들을 위해, 그리고 식어 가는 서던 록의 부활을 위해 레너드 스키너드를 재가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