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59
Tenor Saxphone, Clarinet
모던 재즈의 역사를 회상할때 위대한 뮤지션 찰리 파커가 우선 떠오르겠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던 레스터 영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재즈계의 대통령(Pres)'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레스터 영은 초기 테너 색소폰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서 그의 부드럽고 섬세한 연주는 후일 비밥과 쿨재즈가 탄생하는데 기본적인 토대가 된바 있다. 레스터 영은 Coleman Hawkins의 강력한 연주법을 채택하기보다는 부드러운 음색으로 연주하는 완전히 새로운 구상을 안출해 낸 재즈 거인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일반 사회 규범에 따르지 않는 불순응주의자이다. 프레스(Pres)는 Billie Holiday가 그에게 붙여준 예명이다.
1909년 8월 27일 미시시피주 우드빌에서 태어난 레스터 영은 음악적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게 되었다. 그는 violin, trumpet, drums 등을 배우고 나서 13살에 알토 색스폰을 불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부터 가족들로 이루어진 밴드에 참여하여 기본적인 음악적 소양을 다졌던 그는 30년대 접어들어 독립을 선언하고 이후 여러 악단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3년 베니 모튼(Benny Morton)의 악단에 참여하여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던 그는 1934년 카운트 베이시(Count Baisie) 악단에 가담하여 스윙감 있는 부드러운 연주로 크게 주목받게 된다. 이후 잠시 악단을 나와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과 함께 연주활동을 펼쳤던 그는 1936년 다시 카운트 베이시와 활동하며 여러 레코딩에 참여했다.
1940년 악단을 떠난 레스터 영은 그의 친형제 드러머인 리 영(Lee Young)과 함께 L.A.로 자리를 옮겨 활동을 벌이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1943년 또다시 카운트 베이시의 악단에 가담하였다.
1944년 [Master Takes], [Kansas City Style], [Jammin' with Lester] 앨범을 발표하여 그만의 섬세하면서도 ‘쿨(cool)'한 연주를 선보였던 레스터 영은 기존의 색소폰연주와는 색다른 독특한 주법으로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소니 스팃(Sonny Stitt) 등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듬해인 1945년에는 [The Aladdin Sessions], [Lester Swings]앨범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하며 팬들로부터 호평 받았으며 1946년에도 버디 리치 트리오(Buddy Rich Trio)가 참여한 [Lester Young-Buddy Rich Trio]와 냇 킹 콜 트리오(Nat King Cole Trio)와 함께한 [Lester Young-Nat King Cole Trio]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1952년부터 버브와 계약을 맺고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과 함께 활동하게 되는데 특히 [With the Oscar Peterson Trio]와 [Lester Young with the Oscar Peterson Trio. Vol. 1-2] 앨범은 레스터 영의 출중한 색소폰 연주와 오스카 피터슨의 스윙감 있는 피아노 연주가 잘 어우러진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계속해서 1955년에는 [Pres and Sweets], [The Jazz Giants], [Pres and Teddy]와 같은 좋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1956년에는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에서의 라이브 실황을 담은 [Lester Young in Washington, D.C., 1956, Vol. 1-4]를 발표하여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57년에는 그의 오랜 동료인 카운트 베이시의 앨범 [The Sound of Jazz Young], [The Real Sound of Jazz Young]에 참여하여 뛰어난 연주를 선보였으며 1958년에도 행크 존스(Hank Jones),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와 함께 [Laughin' to Keep from Cryin'] 앨범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59년 파리에서 갑작스럽게 아프기 시작한 레스터 영은 귀국 다음날이 3월 15일 50세의 나이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사후 평소 그가 남겼던 여러 미공개 작품들이 소개되어 많은 재즈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레스터 영은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함께 재즈 색소폰 계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인물로서 특히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시대에 꽃을 피웠던 쿨(cool)재즈의 됨으로서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