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Thompson (럭키 톰슨)
럭키 톰슨(Lucky Thompson)은 1940년대에 대두한 테너 거장중의 한 사람이며 John Coltrane보다는 먼저, Steve Lacy와는 거의 동시에 모던 소프라노 색소폰을 처음으로 분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럭키 톰슨은 엘리 톰슨(Eli Thompson)이라는 본명으로 1924년 6월 16일 미국 사우스 캘리포니아주 콜럼비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방 어느 밤무대에 나가다가 1940년대초 지역밴드에서 연주하면서부터 전문 재즈인이 되었다. 1943년초 New York으로 옮겨와서 라이오넬 햄프톤(Lionel Hampton)과 잠깐동안 연주하였고, 1943년에는 돈 레드먼(Don Redman)과, 1944년에는 빌리 엑스틴(Billy Eckstine), 럭키 밀린더(Lucky Millinder) 등과 활동하다가 카운트 베시를 만난다. 1944년부터 1945년까지 그는 카운트 베시(Count Basie) 밴드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톰슨은 여기에서 Don Byas의 후임자가 되었다. 그의 풍부한 음색은 스윙 시대를 지향하는 듯 하였지만 그의 한발 앞선 즉흥연주는 밥과 잘 맞아 떨어졌다.
그 후 그는 Basie 밴드를 떠나 서부에 안주하였는데,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그를 고용하였고, 톰슨은 유명한 '빌리 벅'에서 연주하게 된다. 또 파커가 로스 러셀의 레이블 다이얼(Dial)과 계야한 녹음일에 불참하자 톰슨이 그자리에 앉게되고 또한 파커와 마일스 데이브스와 함께 녹음한 앨범에도 참가하게 된다. 그는 잠시동안 보이드 레번(Boyd Raeburn)과 함께 슽디오에서 일을 하고 1946년에는 찰스 밍거스와 버디 콜렛이 공동으로 이끌고 브릿 우드맨, 존 앤더슨이 참가했던 스타즈 오브 스윙(Stars Of Swing)의 멤버로 가담하지만 이 그룹은 아쉽게도 한 장의 앨범도 발표하지 못한 채 2개월도 못가서 해체하였다.
1947년 Detroit로 옮겨갔다가 다음 해에 다시 New York으로 돌아와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고 1950년대 초에는 'Savoy'의 간판 스타가 된다. 잠시 R&B에 관심을 갖다가 오스카 피터슨, 밀트 잭슨과 함께 재즈 앨범을 제작하고 더우기 중요한, 당시 레이블 프레스티지와 계약하여 앨범을 준비중이던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J. J. 존슨, 호레이스 실버, 퍼시 히스와 함게 발탁되는 기회를 맞아 유명한 [Walkin'], [Blues 'N' Boogie]를 녹음했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자신의 이름으로 녹음을 하고 스텐 켄튼과 함께 순회 연주를 한다. 그는 유럽에서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의 시기와 60년대 말에 몇년을 보낸다. 이 두 시기에 그는 거의 연주를 안하고 미시건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돌아왔을때인 1973년 그는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한다. 그의 테너와 알토 색소폰 연주는 당시 그의 시대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고 그는 콜맨 호킨스와 돈 바이어스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레스터 영이나 찰리 파커와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연주는 풍부한 상상력과 강한 개성을 함유하고 있따.
그가 전후 밥 메인 스트림계열에서 정통적이고 진보적인 연주가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의 조기 은퇴는 재즈계에 큰 손실이었음이 확실했다. 그는음반 회사, 클럽 경영주, 프로모터 등 음악 사업가들이 연주가들에게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불만족으로 인해 은퇴하게 되었고, 특히 근ㄴ 흑인 음악가들ㅇ을 속박하던 힘있고 편협된 백인들의 행동에 더욱 분개하였다. 그가 녹음한 소수의 음반들은 결코 그가 두려움에 억눌려, 당시 행하여지던 비정당성의 행위에 대하여 역설하지 못했다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