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le Mays (라일 메이즈)
라일 메이즈는 75년 당시 스무살의 팻 메시니와 인연을 맺은 이래 메시니 재즈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키보디스트로 팻 메시니의 동반자로서 그와 함께 퓨전 재즈의 시작을 알린 라일 메이즈의 삶에 있어 음악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1953년 위스콘신주 Wausaukee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항상 표현의 새로운 형태를 발산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모던 크리에티브 뮤지션으로 각광을 받은 그는 어려서 부터 감수성 짙은 감각을 바탕으로 뛰어난 연주력을 표출하여 주위로부터 재능있는 음악인으로 주목 받았다. 10대에 라일은 재즈 여름캠프에 참석하여 리치 맷슨, 마리안 맥파틀랜드와 같은 재능있는 음악가들과 함께 공부했다. 그 후 노스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작곡과 편곡을 공부했으며, 우디 허만의 턴더링 허드 (Thundering Herd)와 순회공연을 가졌다.
그는 노스텍사스 주립대학 밴드를 위해서 작곡을 해주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1975년 첫번째 대학 밴드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모았다.
1975년 위치타 재즈 페스티발 (Wichita Jazz Festival)에서 라일은 스무살의 기타리스트인 팻 메시니를 처음 만났다. 그는 팻 메시니의 밴드에 가입하게 되어 그의 오랜 음악 파트너가 된다. 1977년 보스톤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두사람이 함께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룹이 되었다. 그의 클래식컬할 밥 스타일의 백 연주는 메시니의 기타 소리를 더욱 빛내주었고, 일랙트릭 키보드와 신서사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음의 전개는 갈수록 많은 재즈 팬들을 사로잡았다.
PMG(팻 메시니 그룹)의 그래미상 6회 연속 수상 외에도 라일의 독자적인 작품이 3번이나 후보로 채택되기도 했다.
1986년에 그는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인 [Lyle Mays]를 데이비드 게팬 프로덕션에서 발표하여 컨템포러리한 사운드를 전개하여 호평 받았다. 그 후 1988년에 두번째 솔로 앨범 [Street Dreams]를 공개하여 더욱더 숙성된 사운드를 선보여 재즈 팬들을 매혹시켰다.
1993년에는 게펜 레이블에서 스티브 스왈로우, 마크 존스 등의 베이스, 잭 드조네트의 드럼, 메시니의 기타, 프로듀싱으로 세번째 앨범 [Fictionary]를 발표하여 세련되고 상큼한 사운드를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