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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8 23:56
Max Roach (맥스 로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42  



Max Roach (맥스 로치)

 


아트 블래키(Art Blakey)와 더불어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러머로 평가받고 있는 맥스 로치(Max Roach)는 누구보다도 곡의 리듬을 잘 살려내는 연주자로서 전설적인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과의 활동으로 큰 명성을 얻었던 아티스트이다.

192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너주에서 태어난 맥스 로치는 가스펠 싱어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10살 때부터 드럼을 치기 시작하여 타고난 감각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는 18살 때부터 클럽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펼치며 전문연주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와의 짧은 연주활동 기간 중 그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던 맥스 로치는 43년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의 앨범에 참여하여 안정된 연주를 펼침으로서 재즈계의 관심을 얻어냈다.

이후 베니 카터(Benny Cart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듀크 엘링턴(Duke Elington) 등 거장들의 앨범에 초빙되어 사이드맨으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49년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명반 [Birth Of The Cool]에 참여함으로서 재즈 팬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드러머로 자리 매김 했다.

맥스 로치는 54년부터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과 활동하며 더욱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Max Roach and Clifford Brown, Vol. 1,2]를 비롯하여 [Clifford Brown & Max Roach], [A Study in Brown], [Jam Session] 등 클리포드 브라운의 대표작들로 꼽히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도 모두가 드러머 맥스 로치의 탄탄한 연주가 뒤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6년 클리포드 브라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나서야 했던 맥스 로치는 이후 케니 도햄(Kenny Dorham),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등과 손을 맞추며 [Max Roach Plus Four]와 같은 좋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50년대 후반부터 실험적인 재즈에 관심을 보였던맥스 로치는 많은 프리재즈의 음반에 참여하여 보다 진취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61년에는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Percussion Bitter Sweet]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은 에릭 돌피(Eric Dolphy), 부커 리틀(Booker Little), 애비 링컨(Abbey Lincoln)등의 실험적 뮤지션이 참여한 가운데 맥스 로치의 정확하고 감각있는 드러밍이 곁들여진 훌륭한 작품이었다.
62년에는 재즈 보컬리스트 애비 링컨과의 결혼으로 재즈계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이후 맥스 로치는 소니 클락(Sonny Clark) 트리오와 활동하며 여러 레코딩을 선보였지만 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한 시기를 보냈다. 70년에는 애비 링컨과도 이혼을 하고 말았다.

70년대 후반 좀더 아방가르드적인 재즈에 심취하게 된 맥스 로치는 아치 ?v(Archie Shepp), 세실 테일러(Cecil Tayler), 안토니 브랙스톤(Anthony Braxton) 등의 뮤지션들과 함께 하며 여러 앨범들에 참여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

80년대 접어들어 그는 그의 딸 맥신 로치(Maxine Roach), 테너 색소포니스트 오딘 포프(Odean Pope), 세실 브리지워터(Cecil Bridgewater) 등과 활동하며 [Scott Free], [Bright Moments], [To the Max]과 같은 후기 명작들을 발표하였지만 예전과 같은 명성을 얻지는 못하였다.
90년대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작곡과 공연에 몰두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드럼연주는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항상 탐구하는 모습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였던 그의 학구적인 자세는 오늘날 젊은 연주자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