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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9 00:01
Michael Brecker (마이클 브레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39  



Michael Brecker (마이클 브레커)



현란한 개인기와 격조 있는 발라드 연주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내며 현 재즈계의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추앙되는 테너 색스폰 주자 마이클 브레커는 어떤 스타일의 연주에서도 자신의 색채를 발하는 진정한 뮤지션이다. 70년대 인기 재즈 퓨전 듀오 '브레커 브라더스'를 형인 트럼펫 주자 랜디 브레커(Randy Brecker)와 함께 결성해 활동하며 지금껏 팝과 록, 재즈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자신의 솔로 앨범을 비롯해, 여러 뮤지션들의 음반 크레딧(credit)의 그의 이름을 들어냈다.

로큰롤의 태동 때부터 약방의 감초 격으로 연주의 흥을 돋우는 색스폰은 재즈를 논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찰리 파커, 소니 롤린스, 그리고 존 콜트레인으로 이어지는 테너 색스폰 연주의 계보를 봐도 알 수 있듯 색스폰 연주는 곧 재즈의 역사이자 연주 혁신의 근원이었다.

마이클 브레커는 바로 이런 색스폰 연주의 선현들이 남긴 영감을 온전히 자신의 스타일로소화해 낸 몇 안 되는 연주자로서 웨더 리포트 출신의 웨인 쇼터와 함께 현 재즈 음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색스폰 연주자로 기억된다. 1987년 첫 솔로 앨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무려 8개의 그래미상을 거머쥐는 미증유의 기록을 만들었다.

1949년 미국 필라델피아 생인 그는, 재즈 연주를 즐기는 부모님 밑에서 어려서부터 재즈 연주를 접할 수 있었다. 형인 랜디 브레커가 트럼펫을 연주할 때 그는 클라리넷과 알토 색스폰으로 재즈의 감각을 익혀나갔다. 60년대 한창 주가를 올리던 비비 킹과 에릭 클랩톤의 일렉트릭 블루스에 심취해 있던 중, 고등학교 때 처음 접한 존 콜트레인의 연주는 그의 인생을 재즈에 헌신케 하며 이후 테너 색스폰 연주자로 진로를 결정한다.

1969년 뉴욕에 진출한 그는 형과 함께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재즈 록 사운드에 관심을 기울였고, 빌리 코브햄, 존 에이버크롬비를 만나며 재즈 록 밴드 드림스(Dreams)를 결성하며 2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첫 밴드활동은 다른 쟁쟁한 재즈 퓨전 밴드와 자웅을 겨루기엔 부족하다고 판단, 1972년 밴드 생활을 잠시 접고 빌리 코브햄, 호레이스 실버 악단을 비롯한 여러 선배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연마해나간다.

일렉트릭 블루스를 재즈 연주에 접목하길 원했던 그는 1974년, 형인 랜디 브레커와 의기투합, 재즈 펑크(Jazz Funk) 밴드 브레커 블라더스(Brecker Brothers)를 결성, 이듬해 1월 데뷔 작 <Brecker Brothers>(1975)를 당시 신생이었던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에서 발표한다. 이내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 수록곡 'Sneakin' up behind you'를 빌보드 차트에 진입시킨다. 1980년까지 지속된 브렉커 브라더스는 총 6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한 그는 팻 메스니, 칙 코리아, 잭 드자넷 과 같은 거물급 재즈 퓨전 스타와 음악적 교류를 가졌고 세션활동에도 두각을 보이며 조니 미첼의 재즈 퓨전 라이브 앨범 <Court & Spark>(1980), 스틸리 댄의 <Katy Lied>(1975), 폴 사이먼에게 재즈의 기운을 선사해준 명반 <Still Crazy After All these years>(1975),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역작 <Born To Run>(1975)등 수많은 팝 앨범에서 색스폰 연주를 맡으며 뉴욕 재즈계에서 가장 바쁜 연주인으로 주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