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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28 23:14
Machito (마치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83  



Machito (마치토)

 


마치토는 1940년대 강렬한 아프로-쿠반 리듬과 재즈 즉흥 연주의 퓨전을 최초로 선보임으로써 라틴 재즈 역사에 큰 역할을 한 뮤지션이다. 마치토의 밴드는 활력 넘치는 봉고와 콩가, 날카로운 브라스 사운드가 특징이다. 마치토는 프론트맨으로서 마라카스를 흔들며 노래하고 지휘했고, 마리오 바우자는 재즈 중심의 편곡자를 쓰도록 한 혁신가 역할을 맡았다.
담배 제조상의 아들로 태어난 마치토는 십대 시절 쿠바에서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며, 1937년 라 에스트렐라 하바네라의 보컬리스트로 미국에 망명했다. 30년대 후반 몇몇 라틴 아티스트와 오케스트라를 전전했으며 당대의 라틴 밴드 리더 사비에르 쿠가트와 같이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마치토는 1940년대 아프로-쿠반스를 결성하고 다음 해부터 바우자에게 음악 디렉터를 맡겼다. 바우자는 이후 35년간 밴드와 함게 했다.
아프로쿠반스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스탠 켄튼 오케스트라와 같이 공연하기도 하고(마치토는 켄튼의 싱글 ‘The Peanut Vendor’와 ‘Cuban Carnival’에서 마라카스를 연주했다) 머큐리와 클레프 레이블에서 녹음을 했다.<BR>바우자의 조언으로 마치토의 밴드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찰리 파커(‘No Noise’에서 같이 연주), 디지 길레스피, 플립 필립스, 하워드 맥기, 버디 리치, 해리 에디슨, 캐논볼 애덜리, 허비 맨, 커티스 풀러, 조니 그리핀 등 기라성 같은 미국 재즈 솔로이스트들과 같이 음반을 녹음했다.
마치토의 밴드는 뉴욕 팰러디움에서 정기 공연을 가지는 등 1950년대 맘보 열풍이 불 때 인기의 정점을 달리다가 60년대 대변혁기에도 꿋꿋이 살아남았으며 1976년 바우자를 잃은 뒤에도 ‘살사’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8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후기에는 파블로와 타임리스에서 음반을 냈다.
1984년 런던에 있는 토니 스콧의 클럽에서 연주하던 도중 마치토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카를로 오티스가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 [Machito: A Latin Jazz Legacy]가 1987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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