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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19:25
Mountain (마운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1  



Mountain (마운틴)
 


 
마운틴 역사의 발단은 60년대의 수퍼밴드 크림과 영블러드(Youngbloods)의 프로듀서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펠릭스 패팔라디라는 인물에 의해 시작한다. 그는 68년, 롱아일랜드 출신의 밴드 배이그런츠(Vagrants)의 레코딩을 담당한다. 실질적으로 베이그런츠의 음악은 펠릭스의 흥미를 끌지는 못하였으나 펠릭스는 그 밴드를 통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250파운드의 젊고 덩치 큰 기타리스트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레슬리 웨스트였다.

펠릭스에게 있어 블루지한 필링이 가득했던 레슬리 웨스트란 존재는 각별하게 받아들여졌고 그에게 프로듀서의 역할과 함께 베이스기타를 잡도록 만들었다. 레슬리 웨스트의 솔로앨범은 신속하게 그 청사진이 만들어졌다. 우선적으로 라이브를 위해 스티브 나잇(Steve Knight, 키보드), 노먼 스마트(Norman Smart, 드럼) 등으로 짜여진 라인업이 확정되었다. 이들은 69년 여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냈고 평론가들로부터 ‘크림보다 더 크림 같다.'는 평을 얻어냈는데, 당시 마운틴의 사운드는 기타의 거대한 록리프와 두텁고 박력 있는 베이스와 키보드가 결합된 블루지한 필의 미드 템포 하드록이었다. 마운틴은 사운드의 무게추가 최하부에 닿을 만큼의 헤비함과 함께 선율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정성을 보유했고 마운틴의 프론트맨인 레슬리 웨스트는 마력적인 서스테인을 지닌 리드기타와 간결한 프레이징으로 일약 70년대의 독보적인 기타리스트로 자리매김을 했다.

69년 말에 밴드에 가세한 코키 랭은 견고하고 파워풀한 비트로 마운틴의 사운드를 타이트하게 조율해 나갔는데 그의 연주는 존 보냄(John Bonham)과 키스 문(Keith Moon)의 장점만을 따왔다는 평가를 받아내기도 했다. (레슬리 웨스트와 코키 랭은 오늘날까지 우정을 쌓아오고 있는 절친한 친구사이이자 음악 파트너다. 뉴욕토박이인 레슬리와 캐나다 출신인 코키가 처음 만난 것은 64년 롱비치에서였다. 당시 레슬리는 19세, 코키는 불과 16세였다.)

마운틴은 70년부터 72년까지 석 장의 스튜디오앨범과 한 장의 라이브앨범을 공개하는 등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했고 음반판매고와 차트에서도 호조를 보였다. 이 시기는 마운틴의 역사에 있어 가히 황금기라 할만 했는데 데뷔작 [Mountain Climbing]이 앨범차트 17위에 올랐고 여기에서 싱글커트된 'Mississippi Queen'이 21위를 기록했다. 이어 공개된 [Nantucket Sleighride]와 [Flowers of Evil]도 각각 앨범차트 16위와 35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마운틴의 양대기둥이었던 펠릭스 패팔라디는 앨범 [Live - The Road Goes Ever On] 이후 밴드와의 활동을 접어둔 채 프로듀스 작업에만 전념했고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마운틴의 활동도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레슬리와 코키는 이때를 기회삼아 전 크림의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와 팀을 이루게 되었다.

이 트리오는 자신들의 성을 따 밴드명을 ‘West, Bruce And Laing'으로 정한 후, 본격적인 음악활동에 돌입했는데 72년부터 74년까지 약 2년여 동안 석 장의 앨범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트리오 활동은 펠릭스의 복귀에 따라 단지 일시적인 외도로 그치게 되었다. 재결합한 마운틴은 전열을 가다듬고 더블라이브앨범 세트인 [Twin Peaks]와 레슬리-펠릭스 체제의 최후작이 되는 [Avalanche]를 공개하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마운틴은 이미 예전의 마운틴이 아니었다. 결국 마운틴은 재해산하며 화려했던 70년대에 종지부를 찍고야 만다. 마운틴 해산 이후, 레슬리 웨스트는 코키 랭과 함께 솔로 캐리어를 쌓아갔으나 펠릭스 패팔라디는 83년 그의 부인이 쏜 총에 맞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다.

한편, 81년에 들어서서 마운틴은 다시금 재결성의 움직임을 보였는데, , 레슬리와 코키는 펠릭스의 자리에 유라이어 힙(Uriah Heep)과 레인보우(Rainbow) 등을 거친 베이시스트 마크 클락(Mark Clarke)을 맞아들여 라인업을 이루었으며 보다 스트레이트하고 하드한 사운드가 담긴 재기작 [Go For Your Life]를 85년에 공개했다.

하지만, 10여 년만에 나온 마운틴의 앨범은 이미 연령대가 바뀌어 버린 록팬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고 새롭게 구매층을 형성한 메틀키드들에겐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음악으로 인식되고야 말았다. 이와 같은 록팬들의 냉담한 태도에 의욕을 상실한 마운틴은 88년 이후 종적을 감춰버렸고 팬들은 마운틴이 최종적으로 해산을 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95년 컬럼비아(Columbia)레코드를 통해 레코드샵에 배급된 마운틴의 더블 CD세트 회고집 [Over The Top]이 복고주의의 물결을 타고 거세게 음악계를 강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레슬리 웨스트와 코키 랭, 그리고 전설적인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출신의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Noel Redding)이 팀웍을 발휘해 만든 두 곡의 보너스트랙을 비롯, 총 34곡이 담긴 이 더블 CD세트는 현대의 록음악팬들을 70년대의 히피시대로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Over The Top]의 성공으로 자극을 받은 마운틴은 96년 레슬리 웨스트, 코키 랭, 마크 클락의 라인업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강력한 스튜디오앨범 [Man's World]을 공개하며 건재함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