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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18:33
Mike Inez (마이크 아이네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36  



Mike Inez (마이크 아이네즈)
 


 
하드록 필드의 살림꾼 마이크 앨런 아이네즈(Mike Allen Inez)는 1966년 3월 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태어났다. 필리핀 포크밴드에서 만돌린을 연주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익숙했던 그는 미국의 여느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사춘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로큰롤에 빠져들었다. 그가 베이스를 손에 쥐게 된 계기는 당시 밴드에 베이스 파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전까지 주로 연주하던 악기는 기타였다. 현재도 틈틈이 기타연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기타 이외에 색소폰과 키보드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이크 아이네즈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락씬에 회자된 것은 '전설의 밴드'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과 함께하면서부터였다. 당시 L.A.에서 투어중이던 오지는 공석이 된 베이스 자리를 메꾸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했는데, 여기서 마이크가 극적으로 픽업된 것이었다. 마이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오디션 현장에는 자칭 베이스 깨나 친다는 녀석들이 50명도 넘게 진을 치고 있었지. 온통 가죽옷에다 부츠 신은 놈들 뿐이었는데 난 겨우 리바이스 청바지에 아이스하키 티셔츠 하나 달랑 걸치고 있었지 뭐야.(웃음)"
애초에 오디션에 합격할 확률이 없다고 생각한 마이크는 오지 앞에서 별다른 긴장을 하지않고 자연스런 플레이를 펼쳐보여 밴드 멤버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리고 몇 주 후 그는 밴드측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우편물을 받았다.
"몇 주 내로 아일랜드를 경유하는 영국 투어가 있을 예정이오. 런던 웸블리 아레나에서의 공연도 포함되있으니 지금 하고있는 일 다 중지하고 여기 적힌 스무곡 연습해오기 바라오. 비행기표도 첨부하니 좌석번호 확인하시고."
20대 중반의 마이크는 이렇게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났다.

오지 오스본에서의 성실한 플레이를 눈여겨본 제리 켄트렐(Jerry Cantrell)은 1993년 마이크를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에 전격 합류시켰다. 당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롤러팔루자(Lollapolooza) 페스티벌에서 테스트 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친 마이크는 이듬해 앨리스 인 체인스의 히트작 "Jar of Flies"를 레코딩하며 밴드의 정식 베이시스트로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슬래쉬스 스네이크핏(Slash's Snakepit),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Black Label Society), 오지 오스본 등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밴드면 가리지 않고 빈자리를 메꿔주었던 마이크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동료 뮤지션들로부터 꾸준한 신임을 샀다. 이를 계기로 세간에서는 그가 메탈리카(Metallica)의 세번째 베이시스트로 가입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는데 막상 그자리를 꿰찬 사람은 오지 오스본에서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왔던 로버트 트루히요(Robert Trujillo)였다.

2005년 앨리스 인 체인스의 잔여 멤버들과 쓰나미 구호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던 마이크 아이네즈는 스쿠버 다이빙이 취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호하는 베이스는 주로 워윅(Warwick)사의 제품들이며, 펜더(Fender)사의 프렛리스 기종에 코러스 페달을 연결시킨 세팅도 상당히 즐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