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nitude 9 (매그니튜드 9)
프로그레시브메틀, 혹은 테크니컬록이라고 부르는 음악은(일본시장을 제외하면) 그다지 전세계적으로 큰 상업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꾸준히 만들어지고 발표되고 있다. 그 이면의 드림 씨어터라는 그룹이 미친 파급효과는 물론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요즘도 이러한 추세에 자극받은 밴드들이나 아티스트들의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다만 숫자상으로 엄청난 추세에 이르는 그룹과 앨범들에 비해 그 전체적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스스로 창조한 스타일이나 어린 시절부터 듣고 영향받아온 음악이 아니라, 현존하는 음악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것을 억지로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뮤지션들(즉, 아류)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리고 실력을 쌓아온 뮤지션들이 모인 프로젝트라면 그 얘기는 달라진다. 드림 씨어터의 존 페트루치, 빌리 시언, 테리 바지오 등이 모인 리퀴드 텐션 익스페리먼트(Liquid Tension Experiment)나 마젤란의 트렌트 가드너가 리드하고 드림 씨어터, 로열 헌트 등의 멤버들이 참여한 ‘Explorer's Club', 기교파 기타리스트 데렉 테일러가 얼마 전에 결성한 ‘Eniac Requiem' 등은 모두 이런 예에 속한다.
이미 세 장의 솔로앨범을 통해서 7현기타의 달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기타리스트 롭 존슨의 외도인 매그니튜드 9은 최상의 뮤지션들이 결합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 준다. 70년 생으로 오하이오 태생인 롭 존슨이 첫 솔로앨범을 발표한 것은 94년으로 이 당시는 이미 테크니컬 기타의 붐이 한 꺼풀 꺾여버린 시기였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꾸준히 솔로앨범을 한 장 두 장 발표해가던 롭 존슨이 인스트루멘틀 이외의 음악으로 처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으로, 이 당시에 가장 잘 나가던 모던 헤비니스계의 거물은 바로 판테라였다. 바로 이 판테라 스타일을 모태로 한 밴드 새들백 샤크(Saddleback Shark)는 롭이 솔로와는 상관없이 병행하던 밴드 프로젝트였다. 새들백 샤크는 97년에 [The Killing System]으로 데뷔를 했고 이후 롭 존슨은 또 다른 스타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프로그레시브메틀이라는 90년대 말이라는 상황에서 보아서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음악. 이런 시도는 어쩌면 롭 존슨에게 모험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7현기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롭 존슨에게 있어서 현존하는 록음악 중 최상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레시브메틀에의 도전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밴드의 멤버 중에서 가장 먼저 프로젝트에 합류한 인물들은 베이시스트인 케빈 초운(Kevin Chown)과 드러머인 존 호먼(John Homan)이었다. 롭과 같은 오하이오 출신인 케빈은 테크니컬 기타리스트 제프 콜먼과 함께 에드윈 데어(Edwin Dare)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활동해왔으며 96년에는 자신의 솔로앨범 [Freudian Slip]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또 다른 프로그레시브메틀 프로젝트 아텐션(Artension)에도 참가해서 [Into The Eye Of The Storm](96년), [Phoenix Rising](97년) 두 장의 앨범으로 이미 프로그레시브메틀이란 장르에 대한 사전답사를 마친 인물이기도 했다. 존 호먼은 새들백 샤크에서 이미 롭 존슨과 호흡을 맞춘 사이로 그의 참가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이번 프로젝트의 프론트맨 역할을 맡은 코리 브라운(Corey Brown)은 콜로라도 출신의 프로그레시브메틀 밴드 싸이코 드라마(Psycho Dramam)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로 비록 마이너이긴 하지만 [The Illusion](95년), [Bent](97년) 두 장의 앨범에 참가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키보디스트인 조셉 아나스타시오 글린(Joseph Anastacio Glean)은 버지니아 출신의 신인으로 이전의 활동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록 씬에서 커다란 부와 명성을 누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각 분야에서 알토란 같은 실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모아놓은 덕분인지 매그니튜드9의 데뷔작 [Chaos To Control]은 일단 음악 상으로는 상당한 수작이다. 롭 존슨이 작곡한 곡들은 모두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대개 일정한 컨셉트 없이 이런 부류의 음악을 작업하다 보면 의도한 바와 달리 장황하게 흘러버리는 일이 많은데, 이 앨범의 경우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앨범 곳곳에서 상당히 난이도 높은 플레이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앨범 자체가 테크닉 자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느낌은 없다.
데뷔작이 이 정도라면 상당한 성공인 셈이지만 아직 다음앨범에 대해선 확실치 않은 구석이 남아있는데, 바로 멤버들 모두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이전의 활동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앨범은 아직까지는 사이드 프로젝트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래도 이 데뷔앨범이 확실하게 해낸 것이 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시답잖은 아류 소릴 듣지 않고 프로그레시브메틀이라는 장르에 확실하게 입성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