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fred Mann's Earth Band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
1977년 초 'Blinded by the light'이 전미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지만 맨프레드 맨 밴드는 실은 1963년에 런던 마키 클럽에서 데뷔한 오랜 경력의 그룹이었다. 그 때의 이름은 더 맨 허그 블루스 브라더스였고 곧 키보드를 담당한 남아공 요한네스버그 태생의 리더 맨프레드 맨의 이름을 내건 그룹명으로 EMI 산하의 레이블과 음반 계약을 체결했다. 맨프레드 맨을 비롯해 폴 존스(보컬) 마이크 비커스(기타) 톰 매기니스(베이스) 마이크 허그(드럼)가 그 무렵의 라인업이었다.
1964년 게스트로 출연하던 텔레비전 쇼에 공개한 곡 '5-4-3-2-1'이 영국 차트 5위에 오르면서 히트 잠재력을 인정받은 그들은 그해 여름 유명한 틴 팬 앨리의 콤비 작곡가 제프 배리와 엘리 그리니치가 쓴 곡 'Do wah diddy diddy'을 불러 스타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 엑사이터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이 곡은 그해 여름 비틀스의 'A hard day`s night'을 밀어내고 영국 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잠시 후 미국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비틀스를 언급한 것으로 알겠지만 맨프레드 맨은 60년대의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수놓고 있던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톱 클래스 영국 그룹이었다. 그들은 이후에도 미국의 걸 그룹 슈렐스의 리메이크 곡 'Sha la la', 'Pretty flamingo' 그리고 밥 딜런의 곡을 재해석한 'Mighty Quinn(Quinn the Eskimo)' 등을 잇따라 차트 상위권에 올렸다.
그들의 초기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 성향을 띠었다. 잠깐 보컬리스트가 자리를 비웠을 때 한 런던 공연에서 애니멀스의 에릭 버든(Eric Burden)이 대신 보컬을 맡아준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맨프레드 맨은 그런데 창작보다 남의 곡을 다시 부르는 것에 주력했으며 더욱 이상했던 것은 영국의 R&B 그룹이면서 미국 가수의 곡을, 그것도 포크 가수 밥 딜런의 곡을 자주 노래했다는 점이다. 'Mighty Quinn(Quinn the Eskimo)' 말고도 'With god on our side' 'If you gotta go, go now' 그리고 79년에 발표한 곡 'You angel you' 등이 모조리 밥 딜런이 쓴 곡들이었다. 그들이 나중 밥 딜런의 후예라고 할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데뷔시 '뉴 딜런'으로 불렸고 맨프레드 맨이 재해석한 레퍼토리는 그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었다.
그러나 이후 멤버들의 성향 차이로 그룹은 1969년 해산하게 되었고 맨프레드 맨은 연이어 재즈 그룹 에마넌(Emanon) 맨프레드 맨 챕터 쓰리(Chapter 3) 등을 결성하지만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듭한다. 맨프레드 맨은 그러나 챕터 3시절 앞으로 중요한 음악 방향을 설정하게 되는데 그것은 당시 무디 블루스, 킹 크림슨에 의해 막 싹트기 시작한 프로그레시브 음악이었다. 음반 계약도 당시 프로그레시브 전문 레이블 버티고와 맺었다.
여기서 낸 두 장의 앨범은 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그는 굴하지 않고 더욱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1972년 봄 그룹을 구조 조정해 맨프레드 맨스 어스 밴드로 재탄생한다. 계속 실적은 호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1976년 발표한 앨범 <The Roaring Silences>로 맨프레드 맨은 위력을 회복했다. 차트 1위의 스매시 히트 곡 'Blinded by the light' 덕분에 앨범은 미국 차트에 37주나 랭크됐다. 이 때의 멤버는 막 영입한 보컬의 크리스 탐슨(이전은 마이크 로저스였다), 기타의 데이브 플레트, 베이스의 콜린 패튼덴 그리고 드럼의 크리스 슬레이드였다.
이러한 성과는 커다란 의미가 부여될 만했다. 60년대 전반기를 장식한 브리티시 인베이전 그룹 가운데 롤링 스톤스와 후를 제외하곤 모두 추풍낙엽처럼 사라졌고 맨프레드 맨만이 70년대 후반까지 위용을 유지한 것이었다. 당시 언론도 그의 컴백 성공을 두고 '돌아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에도 밴드는 <Watch>(1978년) <Angel Station>(1979년) <Chance>(1981년) 등을 내놓으며 꾸준한 활동을 벌였고 1983년에는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두 모여 그룹 탄생 25주년 기념 무대를 바로 데뷔했던 그 자리 런던 마키 클럽에서 갖기도 했다. 1984년에는 싱글 'Runner'가 미국 차트 22위에 오르며 다시 돌아왔으나 이후 잇단 음반의 부진으로 80년대 말 대단원의 공식적인 활동을 마감했다.
<The Roaring Silences>의 음악
어떤 점에서 맨프레드 맨 어스 밴드의 앨범이 성공을 거둔 것은 이례적이다. 싱글로는 위험한 긴 곡들이 다수 실려 있는 탓에 맨프레드 맨 자신도 상업적 성과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형적으로 길 뿐 아니라 음악도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가스펠 등 여러 스타일이 융합된 스타일이 시사하듯 '실험성' 곡들이 많다. 대부분 복잡하고 웅대한 스케일이다. 맨프레드 맨은 밴드 사운드의 코어라고 할 자신의 오르간과 하먼드 오르간 등 건반을 통해 다양한 코드의 음악을 시도해 '심포니 팝'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실상 앨범에서 으뜸으로 들을 거리가 그의 건반이 주는 프로그레시브적인 맛이다. 라이브 곡으로 스튜디오에서 다시 더빙한 'Waiter, there`s ayawn in my ear'와 'The road to Babylon'은 한 곡에 여러 음악 스타일을 융합하려는 그의 의욕이 끓어 넘친다. 그의 건반이 가장 광채를 발하는 곡 'This side of paradise'에서 맨프레드 맨의 건반은 키스 에머슨을 방불할 만큼 '휘고 구부러지고 울고 요동치는' 환상적 테크닉을 선사한다. 'Singing the dolphin through'에선 색다르게 재즈 색스폰 주자 바바라 탐슨의 진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을 리메이크한 'Blinded by the light'도 단순함과는 인연이 멀다. 차트 정상을 밟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 곡은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치고는 드물게 동력(動力)이 가득한 곡이다. 이 곡은 그 당시 '보스'로 떠오르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밥 딜런이 피터 폴 앤 메리가 'Blowin` in the wind'를 불러 원 작곡자로 유명해진 것과 흡사하다. 사실 80년대를 휘몰아친 브루스 스프링스틴이었지만 그가 쓴 곡 가운데 차트 1위를 점한 곡이라곤 딱 이 곡 하나밖에 없다.
맨프레드 맨은 내친 김에 그의 곡을 하나 더 리메이크한다. 'Questions'를 뒷면으로 한 싱글 'Spirits in the night'이 그것으로 이 싱글은 미국에서만 발표되어 차트 40위에 오른다. 영국 판에는 없으나 이번 발매 CD에는 'Blinded by the light'의 싱글 버전과 함께 보너스로 수록했다.
수록된 일곱 곡 가운데 유일하게 스타일이 확연하게 다른 'Questions'는 발라드 곡조로 앞선 곡들의 흥취를 차분하게 정리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언제나 들을 적마다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드는 곡이다.
록의 가능성을 실험하여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70년대의 음악인의 자세와 당시의 주요 음악 경향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음반이다. 바로 이게 70년대 사운드다. 또한 우리에게 그 시절 미국 그룹의 음악보다 왜 영국 그룹의 것이 더 사랑 받았는지도 알려주는 음반이다. 무엇보다 감미로운 'Questions'를 깨끗하게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