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t Loaf (미트 로프)
'고깃덩어리'라는 뜻의 예명처럼 거구의 몸집과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는 미트 로프는 우리에게 1977년의 앨범 <Bat Out Of Hell>, 그리고 그 속편격인 1993년의 <Bat Out Of Hell Ⅱ: Back Into Hell>로 널리 알려진 팝 록 뮤지션이다. 곡은 1993년 앨범에서 발표되어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싱글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that)'가 유명하다.
1946년 1월22일 미국 텍사스 달라스 태생으로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다가 음악의 길을 선택,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팝콘 비자드'라는 이름의 밴드로 쇼 비즈니스계에 발을 내디뎠다. 본명은 마빈 리 어데이(Marvin Lee Aday)이고 1984년 마이클 어데이로 개명했지만 우량아였던 탓에 아버지가 불렀던 애칭 미트 로프로 예명을 취했다.
밴드가 해산한 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시작으로 영화, TV의 배우로 활동을 넓히게 된 그는 브로드웨이 데뷔작 <헤어>에 출연하며 순회공연을 하던 중 스토니(Stoney)라는 이름의 뮤지션을 만났다. 그와 두 번째 밴드 '스토니 앤 미트 로프'를 결성해 데뷔 앨범을 1971년 선보였고, 거기서의 싱글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은 첫 차트진출 곡이 되었다(싱글 차트 71위)
이후 일련의 뮤지컬에 출연한 것이 전환이 되어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짐 스타인먼(Jim Steinman)을 뮤지컬 <More Than You Deserve> 때 만나게 된다. 그가 곡을 쓴 미트 로프의 앨범 <Bat Out Of hell>은 1977년에 발표되어 그를 최고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여기서는 빌보드 싱글 11위를 차지한 'Two out of three ain't bad'을 비롯해 'Paradise by dashboard light'(39위) 'You took the words right out of my mouth'(39위) 등의 히트곡이 나왔고 앨범은 미국에서만 1400만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영국에서는 15년이 넘게 앨범차트에 머물러 가장 오랫동안 차트에 머문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스매시 히트는 부담으로 작용, 이후의 작품들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1981년의 앨범 <Dead Ringer>, 1985년의 <Bad Attitude>, 1986년의 <Blind Before I Stop>, 1987년의 라이브 <Meat Loaf Live>는 별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트 로프는 영화 쪽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가 다시 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때는 전성기로부터 15년 정도가 흐른 1993년에 앨범 <Bat Out Of Hell Ⅱ: Back Into Hell>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싱글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that)'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에게 생애 첫 싱글 차트 정상의 영광을 안겨주었으며 앨범도 차트 정상을 호령하며 500만장의 판매고를 수립했다. 그와 짐 스타인먼이 모두 존경해마지 않는 바그너(Wagner) 식의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요소들과 <미녀와 야수 > <엘리펀트 맨>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에 기초한 싱글의 뮤직비디오 역시 화제를 불러 모았다. 후속 싱글 'Rock and roll dream come through'(13위), 긴 제목의 'Objects in the rear view mirror may appear closer than they are(백미러의 물체는 실제보다 가까이 보인다)'(38위)도 호응을 얻는 화려한 재기였다.
재기 여파를 타고 2년 뒤인 1995년에 다시 앨범 <Welcome To The Neighborhood>를 내놓았다. 여성 작곡가 다이안 워렌(Dianne Warren)이 쓴, 전작과 유사한 느낌을 준 록발라드 'I'd lie for you'(13위)로 저력을 발휘했지만 그것으로 다시 도래한 스타덤은 끝이었다. 2003년, 8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인 <Couldn't Have Said It Better>을 내놓고 다시 한번의 영광을 꿈꾸었지만 세인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그는 1994년과 1996년 내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