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ury Rev (머큐리 레브)
머큐리 레브로 향하는 길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들의 음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 제목처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과도 같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궁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풍성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덧입혀진 자극적인 기타 노이즈는 이들의 혼돈스런 사운드를 잘 대변해준다.
그렇다고 맨정신에 듣기 힘들 정도로 난해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플루트, 프렌치 혼, 바이올린, 첼로, 보우드 소(Bowed Saw) 등 다채로운 악기들로 그려낸 음의 그림은 현기증을 유발하면서도 한편으로 끝없이 아름답다.
다분히 실험적이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판타지 뮤직'으로 모던 록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고 있는 머큐리 레브는 1980년대 말, 미국 버팔로에서 결성된 그룹이다. 물론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원인은 멤버들의 결속력 부족이었다. 그룹의 중추인 조나단 도나휴가 자신이 투어 기타리스트로 있던 드림 팝 밴드 플레밍 립스(Flaming lips)에 훌쩍 가입해 버린 것. 역시 창단 멤버 중 하나인 데이브 프리드만이 한 술 더 떠서 그가 연주한 음반을 프로듀스하겠다고 나서자 그룹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룹은 다시 모였으나 상황은 별반 개선될 조짐을 나타내지 않았다. 영국의 마이너 레코드사 <Rough Trade>에서 대망의 데뷔 앨범 <Yerself Is Steam>을 내놓았으나 미처 홍보도 하기 전에 회사가 도산하고 만 것. 낙심한 멤버들은 다시 분열의 징후를 보였고, 밴드는 와해 위기에 몰렸다.
그 상황에서 밴드를 구해 준 것은 메이저 레이블 <소니>와의 계약이었다. 힘을 얻은 그룹은 1집을 재발매했고, 영국 차트에 진입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뒤이어 공개된 두 번째 음반 <Boces>에 대한 호평은 이들을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 까지 진출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1970년대 록의 유산인 사이키델릭의 요소를 굳게 간직한 이들은 아트 록과 프리 재즈적인 방법론까지 체화하며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러한 변화는 1995년 작품 <See You On The Other Side>에 잘 드러났다. 다양한 음악의 지류가 관통하는 이 앨범은 다시 한 번 골수 마니아들을 뒤흔들며 밴드의 위상을 드높였다.
상승기류를 타던 도중, 보컬을 담당하던 데이비드 베이커가 해고당하는 불상사를 겪었으나 이미 좌절을 경험했던 밴드는 주저앉지 않았다. 이들은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 언더월드(Underworld)등 새 얼굴들이 자리한 신흥 레이블 <V2>로 적을 옮긴 후 세상을 놀라게 할 회심의 일타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렵사리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Deserter's Songs>에 쏟아진 찬사는 비틀스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1998년 그해 앨범은 <NME>, <언커트(Uncut)>등 유수한 음악잡지들로부터 '그 해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되는 등 끊임없는 갈채를 받았다. '버려진 자의 노래들'이라는 암울한 타이틀을 무색케 하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신파와는 거리가 멀면서도 끊임없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Holes', 'Endlessly'등은 한달음에 신선한 충격을 바라던 록 키드들을 빨아들였다.
범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밴드는 2001년 <All Is Dream>을 발표하며 평단과 팬들로부터 다시금 환영받았다. 글램 록의 제왕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동료였던 토니 비스콘티(Toni Visconti)가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음반에서 밴드는 아트 록의 염료를 전작에 비해 더욱 강하게 사용해 화려함을 강조했다. 'The dark is rising', 'Lincoln's eyes'가 대표적인 트랙들. 음악은 여전히 어둡고 침울했지만 그룹은 그와는 다르게 고공비행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