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l Church (메탈 처치)
실상 네임 밸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중량감은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아무튼 메탈리카 (Metallica), 메가데쓰 (Megadeth)와 함께 스래쉬 메틀계의 3M으로 통했던 메틀 처치 (Metal Church)는 1970년대 중반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었던 펑크록 그룹 Lewd의 기타리스트였던 커트 밴더후프 (Kurdt Vanderhoff)를 중심으로 보컬에 데이빗 웨인 (David Wayne), 그리고 기타에 크레이그 웰스 (Craig Wells), 베이스에 듀크 에릭슨 (Duke Erickson), 그리고 드럼에 커크 애링턴 (Kirk Arrington)의 라인업으로 1982년 시애틀에서 결성되었다.
영국 켄트에 위치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데모 테입 [4 Hymns]를 제작,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이 언더그라운드 메틀 매니아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으면서 '메틀 팬진 (Metal Fanzine)'지의 차트에도 랭크되어 락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4 Hymns] 발표 후 이들은 [Metal Massacre 5]와 [Northwest Metal Fast] 두 장의 컴필레이션 음반에 참여한 후 1984년 말 일렉트라와의 정식 계약을 체결,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Metal Church]를 발표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판테라 (Pantera)와 데프톤즈 (Deftones) 등의 거물 밴드와의 작업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테리 데이트 (Terry Date)의 프로듀싱 하에 강력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리프 메이킹을 앞세워 절뎔??안정된 스래쉬 사운드를 연출, 팬들과 관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아 내었다.
이어 특유의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격정적으로 표출된 명반 [The Dark]를 1986년 앤스랙쓰 (Anthrax)와 어글리 키드 조 (Ugly Kid Joe)의 음반 작업에 참여했던 마크 닷슨 (Mark Dodson)의 프로듀싱으로 발표하게 되는데, 특히 매 곡마다 긴장감을 잃지 않는 공격적인 에너지와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성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하는 고집스러움이 넘쳐나는 산출물로 인정받아 상업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 모두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던 음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성공의 최대 견인차 역할은 보컬리스트 데이빗 웨인의 도발적인 보컬과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뿜어내는 강력한 리프 향연에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후 메탈리카의 월드 투어 및 킹 다이아몬드 (King Diamond), 아모드 세인트 (Armored Saint), 메가데쓰 등의 미주 투어에 서포트로 동참하게 되어 이들의 이름을 알리는데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외에 네델란드의 졸레 (Zwolle)에서 매년 열리는 AARD Shock Festival에도 참여하여(1987) 유럽쪽까지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하지만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메틀 처치는 그룹 사상 최악의 침체기에 빠져버리게 되는데, 1987년 6월에는 밴드의 창설자 커트 벤더후프가 탈퇴하고, 1988년 4월에는 보컬리스트 데이빗 웨인이 역시 그룹을 등지고 만다. 졸지에 음악적 리더 격인 두 사람을 잃어 난감해하던 메틀 처치는 먼저 커트의 후임으로 존 마샬 (전 블라인드 일루전 (Blind Illusion) 출신이며, 한 때 메탈리카의 기타 파트 스텝이기도 했던)을 영입한다. 그는 제임스 헷필드 (James Hetfield)가 손가락 골절상을 입자, 그를 대신해 메탈리카의 공연에서 기타 연주를 맡았던 인물이었고, 이를 눈여겨 본 커크 해밋 (Kirk Hammett)의 소개로 메틀 처치에 가입하게 되었다.
메틀 처치는 또한 보컬리스트 마이크 하우 (전 헤레틱 (Heretic)의 멤버)를 맞아들여 그룹의 라인업을 새로이 정비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제작된 앨범이 [Blessing in Disguise]이다. 걸작 [The Dark]를 공개한 후 약 3년에 가까운 침체기를 거친 재기 앨범인 것이다. [The Dark]에서 보여준 탁월한 초강력 스래쉬 사운드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리프의 활용이 뛰어난 강한 파워 메틀 에너지를 쏟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이 앨범 발매 후 소속 레이블 일렉트라가 회사 방침상의 이유를 들어 돌연 계약 파기를 선언해 이들은 1990년 8월 Epic사와 새롭게 계약을 체결, 통산 4집으로 기록되는 [The Human Factor]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메틀 처치의 2집 앨범에도 참여했던 마크 닷슨이 프로듀싱을 담당했으며 4개월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한편 메틀 처치를 떠난 그룹의 창설자 커트는 홀 어플레임 (Hall Aflame)이라는 락큰롤 밴드를 결성해 데뷔 앨범 [Guarantted Forever]를 발표한 바 있다. 1993년 메틀 처치는 앨범 [Hanging In The Balance]를 Blackheart 레이블에서 창단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커트 벤더후프의 도움을 받아 발매한다. 특히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의 기타리스트 제리 켄트렐 (Jerry Cantrell)이 참여한 'No Friend'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앨범은 브리티시 헤비메틀의 중후한 분위기를 도입해 드라마틱한 파워 메틀 노선의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앨범을 발표한 이후 2년동안 Ultimate Power Force라는 이름으로 비셔스 루머스 (Vicious Rumors)와 함께 월드 투어를 펼치면서 메틀 씬에서 가장 강력하고 인상적인 라이브 밴드의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오랜 기간 해체된 상태에 놓여 있었던 메틀 처치는 원년 멤버 그대로 모여 전 세계 수많은 팬들에게 다시금 이들의 박진감 넘치는 록 사운드를 선사하고자 재결성 음반 [Masterpeace]를 들고 찾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