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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18:02
Michael Bloomfield (마이클 블룸필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0  



Michael Bloomfield (마이클 블룸필드)
 


 
“결코 내 자신을 록스타라고 여길 수가 없다. 난 그저 블루그래스와 컨트리 블루스를 수년동안 연주해오고 있을 뿐 일렉트릭 기타 영웅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컨트리 앤 웨스턴이 가미된 블루스록을 연주했던 마이클 블룸필드는 지미 헨드릭스와 같은 세대로 헨드릭스와 함께 연주도 여러 번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기타리스트이다. 마이클 블룸필드는 1944년 7월 28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가 기타를 잡게 된 것은 척 베리, 제임스 버튼, 스코티 무어, 클리프 갤럽 등에 감동 받아서였다.

시카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시카고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음악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그러다가 66년 폴 버터필드와 엘빈 비숍이 만든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Butterfield Blues Band)에 가입해 재능 있는 백인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음악적 캐리어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그는 1년 후 그룹을 탈퇴하고 버디 마일즈 등과 함께 ‘Electric Flag’를 결성해 2장의 앨범에 참여했다.

이후 마이클 블룸필드는 솔로의 길을 걸으며 몇몇 굵직굵직한 명반들을 만든다. 그 중의 하나가 알 쿠퍼, 스테픈 스틸스 등과 함께 연주한 [Super Session](68)과 [The Live Adventures Of Mike Bloomfield And Al Cooper](69)이다.

75년에 그는 MCA의 주선으로 드러머 카마인 어피스와 베이시스트 릭 그렛치─그는 Blind Faith출신이다─ 등과 함께 KGB를 결성해 'Midnight Traveller'같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KGB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일본에서만 공개된 라이브앨범을 끝으로 해산되었다.

이후 그는 생활고 때문에 포르노 영화음악에 손을 대며 방황하다, 77년 솔로앨범 [If You Love These Blues, Play Em’As You Please]를 발매해 새롭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 앨범은 그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 음악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If You Love…] 이후에도 그는 1년에 한 장 이상의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히 연주활동을 계속해갔다. 그러나 81년 2월 15일 그는 자신의 차 속에서 사인불명의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기리기라도 하듯 81년에[Living In The Fast Lane]과 [Crusin’For A Brusin’] 등 2장의 유작앨범이 발매되었다. 또한 [Guitar Player]지는 그를 82년 최고의 어쿠스틱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지목했다.

주지하다시피 마이클 블룸필드는 소위 ‘화이트 블루스’ 기타의 대표적인 음악인이다. 그는 워낙 내성적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의 호인이라 실력을 인정받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스케일 큰 방대한 음을 쏟아내는 표현력강한 블루스맨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장기중의 하나인 벤딩 프레이즈와 같이 조심스럽고 의미 있게 음을 노래하는 기타리스트이다. 또한 고음부에서의 잦은 핑거링을 통해 내추럴 톤 특유의 맑고 예민한 솔로를 들려준다. 특히 마이클 블룸필드는 성격이 분명하고 자아가 강한 기타를 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60년대의 그는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큰 충격을 받아 그간 자신이 연주했던 전통적인 형태의 블루스 작법을 버리고 진보적인 스타일로의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이 당시 그는 8 또는 12소절이라는 블루스의 형식을 과감히 깨고 프로그레시브적인 개념에 입각해 실험적인 프레이즈를 쏟아내었다. 스케일에 있어서도 블루노트에 무조적인 어프로치를 접목하기도 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실험성은 어디까지나 잠시뿐 7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며 그는 다시 전통적인 블루스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