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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18:07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7  



Michael Jackson (마이클 잭슨)
 


 
팝계의 피터 팬 마이클 잭슨은 1958년 8월 29일 미국 북부 지역인 인디애나주 게리시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마이클 잭슨의 본명은 Michael Joe Jackson인데, 이것은 그가 운영하는 MJJ 프로덕션의 이니셜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분명 하늘이 내린 축복을 받고 태어난 듯, 마이클의 부모는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 조셉은 철강소에서 크레인 기사로 일했는데 밤에는 팰컨스라는 블루스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어머니 캐서린은 보컬리스트이자 클라리넷 연주가이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감당 못할 정도로 식구가 늘자 음악에 쏟았던 열정이 차츰 식었다. 그러던 중 집안 분위기 탓이었는지 조셉의 9남매는 거의 음악에 남다를 재능을 보였고 그중 거침없이 유명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당찬 꼬마 마이클의 재능은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무한한 교육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조셉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스파르타식으로 춤과 노래를 연습하게 했다. 당연하게도 형제 그룹의 메인 싱어는 마이클의 차지가 되었는데, 당시 다섯 살이던 마이클은 대부격인 제임스 브라운의 목소리와 춤을 흉내낼 수 있었고 유명 R & B가수들도 독특하게 모방할 수 있었다. 너무나 엄격하고 혹독한 연습과 스테이지 매너 익히기가 이어졌는데 조셉으로서는 아들들의 부업으로 경제적 부담을 덜어보자는 데에도 목적이 있어서 더욱 심해지기도 했다.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매일 아버지는 연습 채비를 끝내고 형제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우리들이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연습을 시키곤 했어요. 오후 3시부터 시작한 것이 한밤중까지 이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아마 하루에 7시간 이상씩 연습했을 거예요. 우린 정말 불만을 터뜨리고 싶었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집을 나가고도 싶었어요."
마이클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는데 그때의 앙금이 남아 아직도 부자지간은 약간 서먹한 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마이클은 한 공연에서 "아버지를 용서한다." 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잭슨파이브 내에서 활동하던 그의 모습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족하다. 'King of Pop'으로 부상하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마이클은 소년기에 맑고 청아한 미성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였다. 몇해 전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가 리메이크해 발표한 'I'll be there'는 본디 마이클의 미성으로 불렸던 노래이다. 그러나 사춘기가 오자 남자로서 변성기를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마이클은 시련을 딛고 일어났다. 1979년 솔로 독립을 선언하며, 황금의 손 퀸시 존스의 도움으로 대망의 첫 솔로앨범 [Off the Wall]을 발표한다. 미국내에서 80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그래미 최우수 R&B 퍼포먼스를 수상했다. 바로 이 시점 마이클은 무대공연 도중 제자리에서 도는 동작을 취하다가 심하게 넘어져 코뼈가 부러져 버리고 만다. 이후로 수차례의 성형 수술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백인처럼 되기 위하여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뜬소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런 수술은 의학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피부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것은 백반증이라고 하는 피부병에 걸렸기 때문인데, 피부의 색깔이 군데군데 빠져 얼룩이 생기고, 심하면 온몸에 커다란 얼룩이 생기는 병인데, 자외선 자극에 특히 민감하여 마이클은 늘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이다. 화장을 두껍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다음으로 나온 앨범이 82년의 [Thriller]인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마이클을 'King of Pop'으로 만들어준 음반이다. 총 9곡 중 모든 곡이 Billboard No.1 또는 Top 10에 들어갔다. 5,200만장의 판매고로 기네스북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판매되고 있는 앨범이다. 26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을 휩쓰는 대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이제 노래뿐 아니라 화려한 의상과 문 워킹(Moon Walking)을 선보이며 격렬한 춤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동시에 답보상태에 있던 뮤직비디오의 가치를 재인식시켰다.

87년에 발표된 [Bad]는 총 11곡중 5곡이 Billboard No.1에 올라 또 하나의 기네스 기록을 만들어 냈다. [MoonWalker]는 뮤지컬 형식으로 [Bad]를 기초로 하여 만든 영화이다.

91년에 발표된 [Dangerous]는 퀸시 존스에게서 떨어져 나와 만든 첫 앨범으로서, 2850만장 이상의 판매량를 기록하였다. 녹음, 믹싱, 프로듀싱 등의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이었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이클은 [Dangerous] 앨범 발표 후 전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Heal the World 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자선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또한 마이클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96년에 발표된 [History]는 "past, present, and future"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자신의 과거,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정리하며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존 히트곡과 15곡의 신곡들로 구성된 더블앨범으로 96년에 발표되었다. 러닝타임 150분에 2장의 CD와 카세트, 3장의 LP, 그리고 그의 친구 및 팬들의 추천사, 축하문, 사진, 수상내역 등이 담긴 소책자까지 마이클에 대한 자료가 총망라되었다. 그는 "History Tour"에서야 고대하던 한국 공연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1996년 10월 11일, 13일 두 차례에 걸쳐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마이클 잭슨의 "History Tour in Seoul" 공연이 있었다. 11일은 평일인 관계로 만석이 되지 못했지만 13일 일요일 공연의 R석은 예매 시작후 2, 3일만에 동이 나버렸다. 97년에 발표된 [Blood on the Dance Floor] 앨범은 이제 마이클의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앨범이다. 춤에도 절제가 있으며, 완전한 King of Pop으로서 보이는 여유가 돋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총 13곡중 5곡만이 신곡이며 나머지는 모두 리메이크 버전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5곡 중에서도 'Morphine'이라는 곡은 가사 내용이 건전치 못하다는 관계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여 한국에서는 12곡짜리 앨범만이 유통되고 있다.

마이클은 이제 40대이다. 체력이 떨어져서 오랫동안 격렬하게 춤을 추는 일도 이젠 힘이 들고 숨이 찬다. 젊은 가수들이 폭풍을 일으키며 쫓아오려 한다. 그러나. 마이클은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그야말로 King of Pop이다. 도대체 이 시대 이후로 어떤 사람이 또 그가 남긴 것과 같은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감히 그런 사람이 나타나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많다. 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극히 드물며, 그는 대부분의 곡들을 직접 작곡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끼'이다. 관객들을 압도하고 카리스마로 누를 수 있는 엔터테이너의 '끼'를 갖춘 사람은 그야말로 마이클 잭슨 단 한 사람 뿐이다. 사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춤과 노래이지만 그것은 그가 기타나 피아노를 못쳐서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