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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5 22:30
Notorious B.I.G,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19  


Notorious B.I.G,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본명 '크리스토퍼 윌리스(Christoper Wallace)', 6피트 3인치에 280파운드의 거구를 자랑했던 배드 보이 레이블(Bad Boy Labels) 소속의 랩퍼. 통칭 비기 스몰(Biggie Smalls), 줄여서 비기(Biggie)로 불렸던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베드포드-스타이에서 유치원 선생님인 어머니를 두고 태어났다. 비기는 학교에서 비교적 우수한 성적의 모범생이었으나 17살이 되던 해에 마약을 팔기위해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한다. 비기는 마약을 팔만큼 집안형편이 너무 어렵거나 끼니를 굶을 정도의 가난에 시달리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비기에겐 마약상들이 우상이었으며 또 비기는 '게토(Ghetto)'에서 흑인 남자가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선 마약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절 비기는 취미삼아 랩을 시작했고 곧 주위에 많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마약상을 하던 비기는 얼마 안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마약거래 중 검거되어 교도소에서 9개월형을 살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형을 마치고 출소한 비기는 다시 베드포드 에비뉴로 돌아가 생활을 하게 된다. 비기는 한 동네의 패거리인 '올드 골드 브라더즈(Old Gold Brothers-OGB Crew)'와 어울려 놀던 중 그 중 한명의 집에 턴테이블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랩을 녹음하여 데모 데잎을 만들었다. 이 데모테잎은 금새 주위에 알려져 돌게 되고 그러던 중 근처에 살던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비기의 랩에 상당한 흥미를 보인 디제이 씨는 매티 씨(matty C)에게 부탁하여 유명한 힙합잡지인 [The Sourc]의 한 코너에 비기의 데모테잎 얘기를 실리도록 하였다. 그 칼럼은 바로 '언사인드 하이프(Unsigned Hype)'라는 코너였는데 아직 메이저에 공개가 안된 신인들을 발구해내는 역할을 하는 코너였다.


매월 우승자를 가리는데 비기도 여기에 당당하게 뽑혀서 소스지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ckadugf 기호가 생겼다. 이 때 이 앨범에는 현재 유명한 래퍼들인 커몬 센스(Common Sense), 모브 딥(Mobb Deep), 백 투 백(Back Ⅱ Back) 등도 참여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결국은 이 컴필레이션앨범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비기는 갑작스런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곧 업타운 레코드의 안드레 하렐(Andre Harell)에게 픽업되어 메이저로 진출하게 된다.


비기는 이때 당시 업타운 레코드에서 A&R의 네셔널디렉터(National Director)로 일하고 있던 션 퍼피 콤즈(Sean Puffy Combs), 즉 퍼프 대디(Puff Daddy)를 만나게 된다. 퍼프 대디는 동부판 슈그 나이트(Suge Knight)로 불렸으며 그 즈음 남성 4인조 보컬 그룹 조데시(Jodeci)와 여성 보컬리스트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의 곡 제작에 참여해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비기는 퍼프 대디 밑에서 랩을 배우며 앨범을 준비했다. 앨범이 완성될 때쯤에 퍼프 대디는 업타운 레코드를 등지고 자신의 새로운 레이블인 배드 보이 엔터테인먼트(Bad Boy Entertainment)를 설립하게 된다.


퍼프 대디를 잃은 업타운 레코드는 곧 비기를 해고하였으나 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드 보이 레이블에 합류한다. 비기는 동료 R&B싱어 메리 제리 블라이지의 'What's The 411', 'Real Love(Remix)' 등의 곡에 랩을 해주면서 데뷔를 한다. 또 영화 [Who's The Man?]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고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하는 등 점진적으로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곧 94년 비기의 첫 앨범 [Ready To Die]가 발매되는데 판매량이 플래티넘을 금새 뛰어넘는 등 큰 호평을 받아 비기는 힙합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게 된다.


1년 후인 95년 빌보드시상식에서 비기의 이름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는 올해 최고의 래퍼' 부문에 기록이 되는 영광을 얻는다. 또 저명한 음악잡지 [롤링스톤]지에서 비기의 [Ready To Die]가 아이스 큐브(Ice Cube)의 히트앨범 [Amerikkka's Most Wanted] 이후로 최고의 앨범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앨범 중 싱글 커트되었던 'Big Poppa'는 큰 호응을 얻어 비기는 빅파파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기도 했다. 싱글커트된 또 다른 곡 'One More Chance'는 빌보드 시상식에서 '올해 최고의 랩싱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95년 비기는 계획되었던 콘서트가 취소되자 프로모터를 구타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고 또 불법 총기소지죄, 마약거래 등으로 경찰과의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 한편 비기는 동료 여자래퍼 릴 킴(Lil' Kim)의 앨범 [Hardcore]의 제작을 도와주었고 R&B 싱어송 라이터 알 킬리(R. Kelly)의 데뷔앨범에 참여해주기도 하였다. 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2장짜리 앨범 [History]에도 'This Time Around'라는 곡에 참여하여 화제가 되었었다. 


비기는 계속 자신의 두 번째 앨범 [Life After Death]를 준비했고 97년 초쯤에 이 앨범은 완성되었다. 그해 3월 9일 비기는 소울 트레인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LA에 머물렀는데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비기는 혼자 차에 앉아 있다가 의문의 총살을 당한다. 그후 동-서의 힙합씬에서는 자각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곧 시카고에서 루이스 패러칸(Louis Farrakhan)의 주최로 열린 회담에 양 지구의 대표인사들 - 스눕 도기 독(Snoop Doggy Dogg), 척 디(Chuck D.), 덕 이 프레시(Doug E Fresh) - 은 비기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동서의 화합을 논하기도 하였다.


이때 동-서 힙합의 화합을 위한 공동콘서트의 계획도 거론되었으며 또 아이스 큐브는 LA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자신의 콘서트 두 개를 비기에게 애도하는 의미로 취소하기도 했다. 5월 14일은 비기의 날로 정하여졌으며 비기의 장례식은 한번 공개로 치렀으나 후에 퀸 라티파(Queen Latifah), 그룹 너티 바이 네이쳐(Naughty By Nature), 그룹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등의 도료 래퍼가 참여한 가운데 비공개로 다시 치러지기도 했다. 장례식 일주일 후에 비기의 두 번째 앨범 [Life After Death]가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