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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7 20:23
Natalie Cole (나탈리 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4  



Natalie Cole (나탈리 콜)

 

 
나탈리 콜(Natalie Cole)은 파워와 가녀림을 함께 담아 내는 특색 있는 보컬로 재즈와 팝을 넘나들며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려왔다. 1900년대 중반 흑인 최고의 스탠다드 보컬로 인기를 누렸던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딸로도 유명한 그녀는 1991년 아버지의 목소리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부른 'Unforgettable'로 그래미(Grammy) 7개 부문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50년 미국 로스 앤젤리스(Los Angeles)에서 태어난 나탈리는 아버지 곁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10살 정도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등 뮤지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서 재즈 싱어로서의 자질을 키워 나간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아버지의 유명세를 통해 쉽게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지만 나탈리는 대학생이 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로서의 길을 결정한다.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대학 재학 중이던 그녀는 매니저인 케빈 헌터(Kevin Hunter)를 만나게 되고 재즈 클럽을 무대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에게는 냇 "킹" 콜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고, 그녀의 독특한 음악적 신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활동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된다.

클럽 활동을 하면서 만난 여러 재즈 뮤지션들과 앨범을 내려고 했던 그녀의 생각은 그다지 쉽게 풀려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레이블에서 음반 제의를 거절당했고, 결국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었던 캐피톨(Capitol) 레코드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1974년 캐피톨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그녀는 1975년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 싱글인 'This will be'를 발표한다. 시작부터 성공의 연속이었다. 첫 싱글인 'This will be'는 싱글 차트 6위의 성공을 거두었고, R&B 차트에서는 No.1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는 데뷔 싱글의 성공에 힘입어 데뷔 이듬해인 1976년 그래미에서 'Best Female R&B Vocal Performance'와 'Best New Artist of the Year'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이어지는 싱글들 'Inseparable', 'Sophisticated lady (She's a different lady)', 'I've got love on my mind', 'Our love' 또한 R&B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성공들을 거두어 들였다. 프로듀서 겸 작곡가 척 잭슨(Chuck Jackson)과 마빈 얀시(Marvin Yancy)는 데뷔 때부터 나탈리의 성공을 이끈 숨은 공로자들이었고, 마빈 얀시는 1976난 나탈리 콜의 남편이 된다.(결혼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1970년대 후반에도 줄기찬 성공 행진을 이어갔다. 여섯 장의 앨범 <Inseparable>, <Natalie>, <Unpredicatable>, <Thankful>, <Natalie Live!>, <I Love You So>를 모두 골드와 플래티넘에 올려놓았으며 가수로서의 연이은 성공 덕분에 CBS와 NBC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엘라 핏제럴드의 음악을 듣고 부르며 자란 그녀의 음악적 기반은 분명 재즈에 있었다. 하지만 가수로 데뷔한 후 그녀는 팝과 재즈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재즈, 소울, 가스펠, 알앤비, 팝을 다양하게 소화해 내었고, 그런 다양한 스타일은 재즈 싱어에게 강한 대중성을 부여했다.

화려한 1970년대를 보낸 그녀였지만 1980년대는 그리 평탄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마빈 얀시와의 결혼 생활에서 아들까지 얻었지만 마빈과 이혼에 이르렀고, 과다한 약물 복용으로 콘서트를 취소하는 등 갑작스럽게 찾아온 개인적인 문제들 때문에 씨름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캐피톨과의 재계약 마저 실패한 나탈리는 미네아폴리스의 한 클리닉에서 갱생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갱생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6년이 지난 후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1987년 프로듀서인 안드레 피셔(Andre Fischer)와 재혼한 나탈리는 이전의 영광을 재현하는 두 번째 고공 비행을 시작한다. 1987년 작 <Everlasting>에서 'Jump start', 'I live for your love', 'Pink cadillac'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골드를 거머쥐었고, 의미 있는 앨범 제목을 담고 있는 1989년 작 <Good to Be Back>에서는 팝적 성향이 강한 'Miss you like crazy'와 'Wild women do'(1990년 히트 사운드트랙 <Pretty Woman>의 첫 곡으로 수록되었다.)를 히트시킨다.

1991년은 그녀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아버지인 냇 "킹" 콜이 생전에 녹음했던 'Unforgettable'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힌 새로운 방식의 듀엣 곡을 수록한 <Unforgettable>을 발표하였고, 이 앨범으로 그래미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단한 영예를 누리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팝적인 곡보다는 재즈적 성향이 강한 노래들 또는 초기 스탠다드 팝들을 앨범에 수록하면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