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W.A.
갱스터 랩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중음악 씬에서 어느 장르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인기와 세를 확보하고 있다. 닥터드레와 아이스큐브를 배출해 내고 갱스터 랩의 갖가지 원형을 제시한 엔더블유에이(N.W.A.)는 현재의 갱스터 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갱스터 랩 씬의 선구자이다.
엔더블유에이(N.W.A.)는 1986년 마약 딜러였던 이지-이(Eazy-E), 월드 크래스 뤡킨 크루(World Class Wreckin Cru)의 DJ였던 닥터드레(Dr.Dre), 디제이 옐라(DJ Yella)에 의해 결성되었다. 마약 밀매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들의 레이블 루쓰리스(Ruthless) 레코드를 설립한 이들은 아이스 큐브(Ice Cube), 더 디오씨(The D.O.C.), 아라비안 프린스(Arabian Prince)를 영입하여 N.W.A.(Niggaz with Attitude)를 출발시킨다.
멤버 이름에서도 'D.O.C.'를 발견할 수 있듯 국내 랩그룹 디제이 덕의 모델이 된 이들은 속된 표현으로 쓰레기들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걸맞게 1987년 저속하고 폭력적인 데뷔 앨범 <N.W.A. and the Posse>를 내놓는다. 마약을 팔아 설립한 레이블에서 갱으로 서부를 누비던 흑인 쓰레기들이 섹스와 폭력을 가득 담아 욕설과 함께 전해주는 이 앨범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갱스터 랩이라는 장르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80년대 말엽 갱스터 랩 그룹으로서 N.W.A.가 각인되어질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앨범이었다.
1988년 지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래퍼 엠씨 렌(MC Ren)을 영입하고, 이지-이, 닥터드레, 아이스큐브, 디제이 옐라, 엠씨 렌의 5인 진용을 갖춘 이들은 첫 번째 메이저 진출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을 발표하고 갱스터 랩의 전설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보수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당시 미국의 사회 속에서 흑인들은 이전 소울이 태동할 때 그랬듯이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울이 흑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싣고 흘러 나왔다면 1980년대 말엽 흑인들의 목소리는 뒷골목 갱단에 의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갱스터 랩이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성을 확보해 나가는 시기였다. N.W.A.는 이런 갱스터 랩 태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동시대 갱스터 랩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가 흑인 공공의 소리를 통해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던 데 반해 이들은 뒷골목의 가장 저속한 소리들을 쏟아 부으며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그룹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들은 두 번째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에서 'Fuck tha police'라는 식의 과격한 가사를 사용하는 등 제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인기를 얻어 나가기 시작했고, 'Straight outta compton', 'Fuck tha police', 'Gangsta gangsta' 와 같은 곡들이 큰 인기를 누리며 플래티넘을 거머쥔다. 이 앨범으로 FBI에게서 경고장을 받았을 정도이면 당시 이들의 앨범이 얼마나 과격하고 도전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Straight Outta Compton>을 통해 이들은 갱스터 랩을 하나의 장르로 확립시키고 대중성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989년 팀의 주축을 이루었던 아이스큐브가 금전적인 문제로 팀을 떠나게 되자 그룹의 주도권은 닥터드레 쪽으로 쏠리게 된다. 아이스큐브는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의 도움을 받아 랩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닥터드레에 의해 주도되었던 N.W.A.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큰 성공을 거둔다. 1990년 발표한 EP 앨범 <100 miles and Runnin′>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1991년 작 <Efil4zaggin>(Niggaz 4 Life을 거꾸로 적어 놓은 제목)은 차트 정상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N.W.A.의 후기작들은 펑키한 면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곧 닥터드레의 음악성이 N.W.A.의 음악을 주도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경제력을 쥐고 있던 이지-이와 음악적인 핵이었던 닥터드레 사이가 점점 벌어졌고 결국 N.W.A.는 92년 닥터드레의 팀 탈퇴와 함께 해체되고 만다.
이후 닥터드레는 솔로 활동을 통해 지-펑크(Gangsta-Funk)의 선구자로 자리하며 1990년대 랩 음악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에 의해 데스 로(Death Raw)레이블이 만들어졌으며,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눕독(Snoop Dogg), 에미넴(Eminem) 등의 뮤지션들은 바로 닥터드레의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랩 스타들이다.
1995년 이지-이가 에이즈(AIDS)로 사망하면서 더 이상 N.W.A.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아이스 큐브, 닥터 드레와 같은 최고의 래퍼들을 배출해 낸 N.W.A.는 분명 랩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했던 그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