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il Zaza (닐 자자)
Neil Zaza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사람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쿠스틱 악기로 출발한 기타는 눈부신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일렉 기타라는 형태로 진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기술의 진보가 꼭 ‘더 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 싶다.
마치 현대전(戰)을 연상케 하는 무한 속도 경쟁과 난무하는 테크닉의 향연장으로 변모해버린 기타씬은 어쩌면 악기가 가져야 하는 기본적 기능인 자신의 느낌, 혹은 감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보다는 극단의 기교를 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역할이 변질되며,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이야 사정이 조금 달라졌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기타를 처음 시작하는 거의 모든 기타 키드들의 희망과 목표가 '속주를 포함한 고난도 기교‘에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불세출의 천재 Yngwie.J.Malmsteen의 출현 이래 전 세계적으로 스피드 경쟁의 광풍이 몰아치는 시기였던 1990년에 모습을 드러낸 Neil Zaza는 그러나, 이른바 ‘Yngwie Kid’들과는 그 출발부터가 상이했다. 그리고 이러한 면은 언론 매체를 통해 수 차례 언급된 Neil Zaza의 인터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앨범 전면에 넘쳐나던 훵키함을 앞세웠던 [Thills & Chills] 앨범은 당대 유행처럼 번져갔던 이른바 ‘현란한 기교를 기반으로 한 스트레이트한 속주 사운드’ 앨범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독특한’ 앨범이었다.
미국 클리블랜드 태생의 Neil Zaza가 지금의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동력에는 2명의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데, 그 첫 번째 인물은 이른바 라이트 핸드 주법이라는 파격적인 발상을 통해 기타 혁명을 일으켰던 천재 기타리스트 Edward Van Halen이다. 수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Edward Van Halen의 초기 앨범들에 대한 찬사와 이 앨범에서 Edward Van Halen이 선보인 발상과 프레이즈에 대해 존경심을 표명(Neil Zaza가 Musicman 기타를 주로 사용하는 것 또한 Eddie와의 연관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하고 있는 데, 이러한 면은 향후 Neil Zaza 자신의 악곡 구성이나 전개에 있어서 어느 한 장르에 경도되지 않는 ‘유연성’을 부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Neil Zaza의 기타 세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한 두 번째 인물로 Bob Frazier를 들 수 있다. 정통 클래식을 배우기 위해 입학했던 University of Akron에서 만난 Bob Frazier는 Neil Zaza가 록 기타리스트로서 가져야 할 테크닉적인면의 완성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를 통해 Neil Zaza는 재즈적인 어프로치 방법과 스윕 피킹, 그리고 아르페지오 주법 등 록 기타리스트로서 갖추어야할 상당 부분의 스킬을 터득하게 된다. 이를 통해 향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는 바(Bar)에 의존하지 않는 독창적인 비브라토 주법을 필두로 한 다양한 테크닉과 메인스트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차별성을 보이는 독보적인 기타 톤이나, 리프 구성, 그리고 작곡 세계를 펼쳐 보이게 된다.
이렇듯 테크닉적인 면에서도 손색이 없는 초 일류급 솜씨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Neil Zaza가 국내에서 다소 저평가 되었던(역시 독보적인 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평가가 되고 있는 Eric Johnson 또한 유사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상당부분은 역시 Neil Zaza 특유의 서정적이고 유려한 멜로디 라인에 기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Neil Zaza가 근 5 년여만에 공개한 신작 앨범 [Melodica] 또한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이미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격인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발표했던 앨범들과 비교해보면 멜로디 라인에의 의존도를 다소 줄인 반면 좀 더 실험적인 사운드 소스들을 사용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dward Van Halen의 영향이 다분히 느껴지는 경쾌한 트랙 "This time"이나,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타이틀 트랙 "Melodica", 그리고 뚜렷한 기승전결과 감성적인 멜로디 라인을 통해 국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것으로 예견되는 "As I go before you" 등의 트랙들은 이전에 선보였던 전형적인 Neil Zaza의 사운드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드럼 샘플링과 키보드 사운드를 가미하여 일렉트로닉적인 면을 부각시킨 격렬한 전개의 "Across the Sand"나 블루스한 필의 발라드 트랙 "Rene",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하게 스캣을 삽입한 트랙으로, 현악 스트링과 트리키한 연주를 선보인 "Forgot to make her mine" 등은 Neil Zaza의 새로운 음악적 탐구를 보여주고 있는 트랙들로 간주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이전의 멜로디 라인을 기대했던 팬들의 욕구를 일정부분 충족시켜주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인 실험적인 작품으로 보여 진다.
많은 이들이 주지하고 있듯이 90년대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던 기타플레이어들 중 대다수는 이미 변화한 음악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출발부터 이들과 달랐던 Neil Zaza는 이러한 메인스트림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솔로 기타리스트로서 더욱 더 확고한 자신 만의 독창적인 아이덴티티 구축에 나서고 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음반이 독창성에 기반하고 있다면, ‘잘 만들어진’ 음반은 ‘세련된’ 클리세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단정을 감안하면 클리세를 완전히 배제한 독창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예술작품이 앞선 이들이 남긴 작법(作法)을 통해서 진보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Neil Zaza의 이번 음반은 자신의 기존 작법에 기반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무난한 첫 걸음을 디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Fusion 성향의 훵키한 스타일과 멜로디를 중시하는 다이나믹한 연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풍성한 사운드를 통해 마치 피아노로 멜로디를 연주하는 듯한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Neil Zaza는 비록 아직까지는 대가(大家)의 풍모를 띤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감수성에 기반 한 멜로디에 대한 천착(穿鑿)은 인간의 감성과 부합하며, 긴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