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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5 22:25
NOFX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35  


NOFX

 

 
미국 LA 출신의 4인조 펑크 록 밴드 NOFX는 1990년대에 명성을 드높인 네오 펑크씬에서 '인디(Indie)'의 의미를 가장 잘 계승하고 구현한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그들은 장사를 위해 음악을 하는 메이저 레이블과 MTV, 그리고 FM 라디오 방송 등 제도권 매체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 인터뷰도 하지 않으며 사진 촬영도 사절한다. 'No radio', 'No videos', 'No interviews'가 그들의 행동강령이다(영국의 인디 밴드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도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


때문에 주류 언론에서 NOFX에 대한 기사와 인터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MTV는 곡을 판다. 그러나 그것은 밴드를 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한다. 우리는 바로 밴드다. 노래가 아니다."라는 프론트 맨 팻 마이크(Fat Mike)의 단호한 언급에서 그들의 확고한 음악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룹은 팬진(Fanzine), 인터넷 펑크 사이트 등 언더그라운드 매체와는 직접 교류를 하며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철저히 마이너 태도를 고집한다. 허나 이 점 때문에 NOFX는 네오 펑크의 '진정한' 스타로 발돋움했다.


NOFX는 1984년 보컬리스트이자 베이시스트인 팻 마이크, 기타리스트 에릭 멜빈(Eric Melvin), 드러머 에릭 샌딘(Eric Sandin)으로 결성됐다. 이후 그들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클럽 공연과 투어를 하며 연주력과 팀웍을 다져나갔다. 전설적인 펑크 레이블 <에피타프(Epitaph)>와 계약을 맺은 그들은 1989년 데뷔작 <S&M Airlines>, 이듬해의 2집 앨범 <Ribbed>를 내놓으며 본격적인 음악 행보를 시작했다. 밴드는 그러나 세컨드 기타리스트의 잦은 교체로 사운드에 안정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1991년 아론 어베이타(Aaron Abeyta)를 정규 멤버로 영입하였다. 아론은 트럼펫 연주도 겸하며 그룹의 사운드에 풍부한 화음을 불어넣었다. 그는 엘 헤피(El Hefe)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룹의 언론에 대한 적대감은 1992년 앨범 <White Trash, Two Heebs And A Bean>에서 최고조에 다다랐다. 음반의 첫 싱글 'Please play this song on the radio'는 라디오의 문제점을 통렬히 고발하는 곡이었다. 이러한 미디어 거부운동에도 불구하고 NOFX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지구촌으로 뻗어나갔다. 1994년 작품 <Punk In Drublic>은 미국에서 골드를 기록했고, 뒤이어 내놓은 1996년의 <Heavy Petting Zoo>, 2000년의 <Pump Up The Valuum>도 (전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좋은 반응을 얻었다.


NOFX의 이력 중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에피타프>에서 정규앨범을 발표하면서, 리더 팻 마이크가 설립한 독립 레이블 <팻 렉 코즈(Fat Wreck Chords)>를 통해 꾸준히 EP와 미니 음반을 출시했다는 점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들만의 음악 공장에서 마음껏 음악을 만들며 인기로 인한 안정감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인 것이다.


NOFX의 음악에는 항상 긴장감이 흐른다. 귀에 쏙 와 닿는 팝 적인 선율과 펑크가 가미된 음악이지만 그들은 그 안에 비판적 메시지를 집어넣어 듣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지 않는다. 바로 쉽게 흥얼거리고 몸을 맡기는 다른 네오 펑크 그룹들과 다른 점이다.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메이저 레이블과 메인 스트림 언론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NOFX의 '불편한' 사운드는 계속 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