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체크 P 
 Q 
 R 
 S 
 T 
 U 
 V 
 W 
 X 
 Y 
 Z 
어제 : 298, 오늘 : 888, 전체 : 343,250
 
작성일 : 20-02-06 10:27
Pearl Jam (펄 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8  


Pearl Jam (펄 잼)

 

 

펄 잼(Pearl Jam)은 90년대 초반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결성된 5인조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이다.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고사드(Gossard)와 베이시스트 제프 아멘트(Jeff Ament)는 데뷔 앨범 발매 후 일주일만에 보컬리스트인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자 리드 기타에 마이크 맥크리디(Mike McCready), 드럼에 데이브 크루센(Dave Krusen), 보컬에 에디 베더(Eddie Vedder)를 영입하여 새로이 밴드를 결성했고, 데뷔 앨범 발표 후 탈퇴한 크루센의 후임으로 데이브 애브루제스(Dave Abbruzzese)를 거쳐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와 일레븐(Eleven)의 드러머였던 잭 아이언스(Jack Irons)를 영입하여 현재의 5인조의 라인업을 갖추었다.


펄 잼으로 개명한 후 에픽(Epic)을 통해 힘이 넘치면서도 멜로디가 풍부한 데뷔 앨범 [Ten](91)을 발표했다. 자체적으로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Alive'에서 드러나듯이 정통성을 계승한 곡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다음 해까지 그다지 눈에 띄는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으나 너바나(Nirvana)로 인해 얼터너티브 록이 메인 스트림 록 라디오 방송에서도 수용되자 너바나의 앨범을 능가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펄 잼의 사운드는 무거운 리프를 중심으로 한 70년대 스타디움 록(stadium rock)에 80년대 포스트 펑크(post-punk)의 거친 면과 분노가 녹아 있으면서도 멜로디와 코러스를 무시하지 않은 사운드였다. 'Jeremy', 'Evenflow', 'Alive' 등은 신선한 수혈을 고대하고 있던 라디오 방송계가 원하던 바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MTV와 라디오에 연속적으로 등장하고 2번째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투어에 참가하면서 계속 지지자들이 늘어갔다. 이들은 "MTV unplugged"와 매트 딜런(Matt Dillon)이 출연한 영화 [Singles]에서 시티즌 딕(Citizen Dick)이라는 그의 밴드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로큰롤 슈퍼스타라는 자신들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음악산업계의 일반적인 관습에 굴복하기를 거부했고 너바나의 앨범이 발매된 후 곧바로 발표한 2집 [VS.](93)에서는 단 한 곡의 싱글이나 비디오 발매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상반된 평가와 함께 정상을 차지하며 앨범 차트에 등장했고 발매 첫 주에 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멀티 플래티넘의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해 이루어진 전미 투어 기간 중 이들은 일반적인 스타디움 규모의 공연은 하지 않고 대학 캠퍼스를 포함한 보다 작은 규모의 공연만을 결심하였다. 또한 고가의 입장권 가격을 요구하는 티켓마스터(Ticketmaster) 때문에 입장권 가격이 20달러를 초과하는 사실에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그 해 여름 공연을 취소했고 티켓마스터 측을 불공정 거래로 고소했다.


이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녹음된 다음 앨범 작업이 끝난 후 드러머인 애브루제스를 해고하고 후임으로 잭 아이언스를 영입했다. 3집인 [Vitalogy](94)는 서민들에 대한 진실성을 다시 입증하듯이 발매 후 2주 동안 LP 한정판으로만 구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차트 60위에 등장하는 기염을 토했고 CD와 카세트가 발매되자마자 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 앨범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죽음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은 95년에도 계속되었고 결국 법원의 판결은 펄 잼의 패배였다. 새 앨범은 닐 영(Neil Young)과 함께 녹음이 진행되었다. 그 동안 베더는 영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호버크래프트(Hovercraft)의 공연에 참여했고 고사드는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다.


마이크 맥크리디와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레인 스탤리(Layne Staley)가 함께 한 프로젝트 밴드 매드 시즌(Mad Season)은 첫 앨범 [Above](95)를 발표했다.
닐 영의 곡들이 수록되어 영의 이름으로 발매된 [Mirror Ball]에는 멤버들이 모두 참여했으나 법적인 이유로 펄 잼의 이름은 수록되지 않았고 대신 이들은 세션 곡들 중 발췌하여 수록한 싱글 'Mirkin Ball'을 95년에 발표했다.


96년 여름에 발표된 4집 [No Code](96)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차트 정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시도한 기묘한 실험정신은 팬 기저층을 실망시켰고 차트에서도 곧 하락했다. 티켓마스터와의 싸움과 대규모 공연을 거부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97년 내내 이들은 새로운 곡 작업으로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고 고사드는 자신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브래드(Brad)의 2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펄 잼은 그 해 말경 보다 더 하드한 새 앨범인 5집 [Yield](98)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발매되자마자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고 상당한 추종자들에 의해 발매 첫 주만에 2위로 앨범 차트에 등장하긴 했으나 곧 차트에서 하락하는 등 상업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성과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전면적인 여름 투어를 시작했고 공연 실황 앨범 [Live on Two Legs](98)를 발매했다.

펄 잼은 시애틀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 중 하나로 티켓마스터와의 싸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서민적인 밴드이다. 가장 섹시한 목소리로 선정되기 한 베더의 카리스마적인 보컬로 그런지(grunge)가 한풀 꺾인 음악계에서 아직도 살아 남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