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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0:32
Pennywise (페니와이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0  


Pennywise (페니와이즈)

 

 
1994년 나란히 발표된 앨범 그린 데이(Green Day)의 <Dookie>와 오프스프링(Offspring)의 <Smash>는 전 세계를 네오 펑크의 물결로 넘쳐나게 했다. 그런지 이후 '돈' 되는 상품을 찾던 메이저 레코드사들은 고기가 물 만난 듯 지하에서 활동하던 펑크 밴드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1976년과 1977년 영국을 강타했던 펑크의 리바이벌 붐이었다. 원조 펑크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공'을 했다는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나 댐드(The Damned)가 구현했던 펑크의 야수성은 철저히 배격되었고, 대중들을 위해 달콤함과 경쾌함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출신의 펑크 밴드 페니와이즈는 메이저 레코드사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단호히 거절했다. 인디 레이블 에피타프(Epitaph)를 통해 앨범을 발표하면서 펑크의 애티튜드를 지켜나갔다. 에피타프는 하드코어 펑크 밴드 배드 릴리전(Bad Religion)의 기타리스트 브렛 구어위츠(Brett Gurewitz)가 1982년 단돈 1,000달러로 설립한 레이블.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배드 릴리전은 1994년 네오 펑크 열풍을 등에 업고 메이저 레코드사인 애틀랜틱(Atlantic)과 계약을 체결하고 음반을 발표했다.

페니와이즈는 고교 동창생인 보컬리스트 짐 린드버그(Jim Lindberg), 기타리스트 플래처 드래지(Fletcher Dragge), 드러머 바이런 맥매킨(Byron McMackin), 베이시스트 제이슨 써스크(Jason Thirsk)로 1988년 캘리포니아의 허모사 비치(Hermosa Beach)에서 결성됐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의 전통적인 취미인 서핑과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며, 그것을 펑크의 쓰리 코드에 실었다. 하지만 비치 보이스(Beach Boys) 식의 즐거움과 여유가 아닌 불만과 고통을 담았다. '백인의 낙오자 정서'를 대변한 것이다. 그들 역시 낙오자였다!.


이러한 이유로 페니와이즈의 음악은 밝지가 않다. 펑크의 원시성을 유지하며 스피드를 강조한다. 또한 배드 릴리전의 직계 그룹답게 멜로디를 부여하여 곡의 리듬과 선율을 수평으로 맞춘다. 1991년 셀프 타이틀 데위 앨범과 1993년의 <Unknown Road>, 2년 뒤의 <About Time> 등의 음반들에 모두 갈무리됐다.


그들만의 길을 향해 전진하고 진화하던 페니와이즈에게 1996년 7월 29일 비보가 전해졌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있던 베이스 주자 제이슨 써스크가 자살한 것이다. 그의 나이 28. 멤버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다음 앨범 작업을 무기한 연기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제이슨을 위한 우정이라고 생각한 페니와이즈는 랜디 브래드베리(Randy Bradbury)를 수혈해 이듬해 추모 음반 <Full Circle>을 내놓았다. 이어 1999년에도 5집 <Straight Ahead>를 발표하며 펑크의 자세를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페니와이즈는 그린 데이나 오프 스프링처럼 수많은 대중들과 소통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고 동료의식을 느끼는 소외된 젊은이들과 교신을 한다. 그래서 그들의 공연장에는 언제나 '적지만 커다란' 추종자들로 가득하다. 2000년에 발표된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Key Club>에 잘 드러나 있다. 바로 이것이 페니와이즈의 힘이요, 펑크의 기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