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Of Salvation (패인 오브 셀베이션)
스웨덴에서 태어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인 Daniel Gildenlow는 불과 11살이던 1984년에 리얼리티(Reality)라는 그룹을 만든다. 87년 리얼리티는 스웨덴의 "Rock-SM"이라는 뮤직콘테스트에 최연소 밴드로 참여하여 최우수 보컬리스트에 입상하고, 같은 해 비틀즈 추모에도 최연소 참여자로 기록된다.
90년이 시작되면서 당시 14세인 Johan Langell이 드러머로 가입하고, 자작곡에 대한 아이디어가 충분히 모아졌다고 생각한 이들은 멤버를 재정비한 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91년 처음으로 갖게 된 단독 라이브에서 패인 오브 살베이션은 청중과 미디어 모두를 완전히 압도하는 실력으로 엄청난 호응을 얻어냈으며, 91년에서 94년까지 열린 거의 모든 콘테스트에서 아무리 못해도 본선진출이라는 성적과 더불어 수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어 매우 훌륭한 성공을 하게 된다.
94년 겨울 다니엘의 친동생인 Kristoffer가 불과 16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가입하면서, 안정적인 리듬파트가 정비됐으나 밴드는 보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키보디스트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들과 어울릴만한 키보디스트를 찾지 못했고, 결국 96년 들어서야 약관의 키보디스트인 Fredrik Hermansson을 멤버로 맞이하게 된다. 패인 오브 살베이션은 즉각 스튜디오 작업을 시작해 새로운 곡과 이미 만들어 놓은 곡을 모아 데모테입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러 레이블에 접촉을 시도했던 이들의 데모테잎은 매우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드디어 97년 Roasting House 스튜디오에서 데뷔작을 녹음한다.
세계의 모든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데뷔작을 발표한지 얼마 안 있어 이들은 98년 두번째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 Daniel Magdic이 의견차이로 탈퇴하고,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Johan Hallgren이 가입한다. 짧은 기간동안 새로운 밴드에 익숙해져야만 했던 요한은 힘들었지만 확고부동한 멤버로 인정받게 되며, 그의 가입이후 발표된 두번째 앨범 역시 데뷔작에 비해 부족함 없는 극찬을 받으며 패인 오브 살베이션은 미국에까지 진출하게 되는 행운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