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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09:17
Papa Roach (파파 로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79  


Papa Roach (파파 로치)


 
미국의 4인조 하드코어 밴드 파파 로치는 보컬에 코비 딕(Coby Dick), 기타리스트 제리 호튼(Jerry Horton), 그리고 베이시스트 윌 제임스(Will James)와 드러머 데이브 버크너(Dave Buckner)로 1993년 북부 캘리포니아 바케이빌(Vacaville)의 조그만 도시에서 결성됐다.


멤버 전원이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한 친구들이기에 음악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기가 수월하였다. 또한 록 밴드의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팀워크를 유지하기에도 최상이었다. 음악의 '기초 체력'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갖춰진 것이다. "우리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페이스 노 모어, 메탈리카, 비스티 보이스 등의 음악을 들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선배 그룹들의 영향을 받아 랩과 메탈을 퓨전시킨 사운드로 순식간에 바케이빌의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산 호세(San Jose), 새크라멘토(Sacramento) 등의 인근 도시로 원정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 당시 새크라멘토의 한 신문에서는 그들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음악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서 연주하는 밴드'라고 평했다.


언론의 이같은 평가는 파파 로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배 뮤지션들, 특히 '하드코어의 제왕'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멤버들은 1996년 여름에 변화를 위하여 새롭게 '밴드 컨설팅'을 단행했다. 먼저 해마다 교회 여름캠프를 책임지느라 연습을 소홀히 했던 베이시스트 윌 제임스 내보내고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던 16살의 토빈 에스퍼런스(Tobin Esperance)를 기용했다. 그 뒤를 이어 프로모터, 상품 판매 등의 업무를 전담할 매니저 브랫 베이어(Bret Bair)를 영입했다. 밴드의 내적·외적인 질(質)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다.


변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룹의 음악 색깔이 확연히 달라졌다. 여기에는 베이스 주자 토빈 에스퍼런스의 공로가 지대했다. 레게에서 영향받은 그의 심플한 베이스 라인은 기존의 그룹 사운드에 펑크(Funk)와 펑크(Punk)를 접목시켰다. 그루브한 느낌도 자연스레 그 뒤를 따랐다. 그룹의 음악 컨덕터 코비 딕은 '드디어 그룹의 소리를 찾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파파 로치는 이런 음악적 변신을 인디 앨범 4장에다 고스란히 담았다. 그들은 1996년의 <Caca Bonica>를 시작으로, 1년마다 <Old Friends From Young Years>, <5 Track Deep>, <Let's 'Em Know>를 발표했다. 특히 700달러를 들여 만든 1997년 작품 <Old Friends From Young Years>는 그들을 메이저로 입성시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수록곡 'Orange drive palms', 'Liquid diet'가 대학 라디오 방송국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들을 눈여겨본 메이저 레이블 드림 워크스(Dream Works)에서 러브 콜을 해온 것이다.


2000년에 발표된 밴드의 메이저 데뷔작 <Infest>는 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첫 싱글 'Last resort'는 모던 록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등 하드코어 밴드들의 난립 속에서 단숨에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후속 싱글 'Broken' 역시 좋은 반응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