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kossoff (폴 코소프)
“단지 보여주는 연주는 싫다. 최대한 내 자신을 표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블루스적 필이 가득찬 연주로 폴 로저스와 함께 그룹 프리(Free)를 이끌던 폴 코소프는 1950년 9월 4일 영국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양친으로부터 클래식 기타 레슨을 6년 정도 받아 음악적 기반을 굳힌 그는 곧 일렉트릭 기타에 관심을 가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섀도우스 등을 카피하며 연습하다가 이후 에릭 클랩튼, 피터 그린, 프레디 킹 등을 접하고 본격적인 록기타 수업을 쌓아갔다. 특히 에릭 클랩튼이 재적해 있을 당시의 블루스브레이커즈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그는 런던의 Fickle Pickle이라는 작은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폴 로저스와 함께 그룹 프리를 결성하게 된다. 이때가 67년이었다.(Free라는 그룹명은 당시 최고의 블루스 뮤지션으로 존경받던 알렉시스 코너의 그룹인 ‘Free At Last'에서 따온 것)
프리는 체스터(Chester)라는 재즈 클럽에서 마퀴 클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연을 통해 지지도를 넓히다가 69년 [Tons Of Sobs]로 데뷔하였다. 그리곤 동년 말 두 번째 앨범 [Free]가 발매되었으나 두 앨범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얻었다. 이들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세 번째 앨범 [Fire And Water](70) 부터이다. 이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프리는 계속해서 [Highway](70), [Free Live!]-71년 2월 영국에서의 실황을 담은 라이브-등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동년 5월 3일 일본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한 이들은 딥 퍼플 등과의 합동 조인트 공연도중 해산을 선언하고 말았다.
이후 이들은 1년 후인 72년 일시적인 재결합을 통해 [Free At Last]와 [Heartbreaker](73) 등을 발표했다. 흩어진 멤버가운데 폴 로저스와 사이먼 커크는 배드 컴패니를 결성했으나 폴 코소프는 실망과 좌절에 의한 약물복용 과다로 76년 3월 19일 LA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심부전증 발작 끝에 죽고 말았다.
폴 코소프는 선이 굵은 블루스 기타리스트이다. 'Be My Friend', 'Mr. Big' 등에서처럼 그의 프레이즈는 신음하고 오열하는 듯한 블루노트 솔로를 들려준다. 특히 클래식 기타를 익힌 감각에 의한 깊고 뜨겁게 걸리는 비브라토는 그의 최고 장기이다.
그는 솔로시 한음 한음에다 매우 격정적인 감정주입을 하는 타입이라, 라인전개가 힘있고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와이드 비브라토라는 측면에선 로빈 트라우어, 조르마 캐코넌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솜씨를 과시한 바 있는 기타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