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Thompson (폴 톰슨)
록시뮤직(Roxy Music)의 드러머 폴 톰슨은 1951년 5월 13일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태어난지 불과 6개월이 될 때 그는 가족과 함께 재로우로 이사를 가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이미 유아때부터 드럼에 흥미를 느껴 드럼 레슨을 시작했으며, 웨스트 시몬사이드 초등학교를 다닐 즈음엔 드럼 이외에도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등등 여러 악기들에 흥미를 보였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드럼세트를 구입하곤 비틀즈(Beatles)를 맨 먼저 카피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토네이도(Tornado) 등을 연습했다. 하지만 베이스페달을 다루는 게 어려워 아예 페달 연주는 생략한 채 카피했다. 그러다가 11살경 그는 부모를 졸라 본격적인 드럼세트를 구할 수 있었다. 'Kat-Kit'이라 불리던 이 드럼세트는 14"x3" 스네어에 심벌은 10인치였고, 그외 크고 작은 액세서리가 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베이스페달 연주가 어렵다고 느껴져 이 세트에서 베이스페달을 제외시켰다.
14살 무렵 그는 "The Tyme"이라는 스쿨밴드에 가입했는 데, 이때서야 비로소 그는 베이스페달까지 달린 완벽한 드럼세트를 장만할 수 있었다. 당시 70파운드를 주고 산 이 악기로 그는 맹렬하게 연습에 몰입했다. 이 밴드는 차츰 그 실력을 인정받아 클럽에 설 수 있게 되는 데, 그는 이것을 기화로 본격적인 음악에 몰두하기 위해 15살이 될 무렵 아예 학교를 때려 치웠다. 그러다가 "The Urge"라는 팀에서 드러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곤 그에 응시해 이 팀의 드러머가 되는 데, 이 그룹의 싱어가 바로 존 마일스(John Miles)였다. 이 밴드는 1주일에 하루도 안쉬고 매일 밤 클럽 공연을 했는 데, 이 때문에 그는 드럼 실력이 날로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는 이 팀으로부터 주급 35파운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일이 많고 또 피곤해 그는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얼마안가 그룹에서 해고당하고 만다.
이후 그는 21살이 될 때까지 빌리 퓨리(Billy Fury)의 백 밴드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멜로디메이커지에서 아방가르드 락을 지향하는 밴드에서 드러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곤 흥분하기 시작했다. 클럽 등지를 떠돌며 판에 박은 음악들만 카피하던 자신이 음악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그 광고를 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과 얘기하다보니 자신의 고향인 재로우 사람 같아 더욱 끌리기 시작했다. 그는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였다. 몇일 후 폴 톰슨은 오디션을 봤고 이렇게 해서 그는 브라이언 페리와 함께 새로운 그룹 생활을 시작했다. 이 팀이 바로 락시뮤직이었던 것이다.
락시뮤직과의 활동을 통해 비로소 그는 드러머로서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고 음악적으로도 많이 성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그는 1980년 락시뮤직과 결별하고 게리 무어(Gary Moore), 조나단 퍼킨스(Jonathon Perkins), 콘크리트 블론드(Concrete blonde) 등등 여러 아티스트들과 활동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음악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스킨스쿠버를 즐기며 BSAC 강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폴 톰슨은 링고 스타(Ringo Starr), 키쓰 문(Keith Moon),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빌리 코뱀(Billy Cobham), 스티브 갯(Steve Gadd) 등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현재 그가 좋아하는 드러머로는 존 로빈슨(John Robinson), 오마 하킴(Omar Hakim), 스튜어트 코플랜드(Stewart Copeland), 피터 어스킨(Peter Erskine)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