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Tosh (피터 토쉬)
레게의 개척자 피터 토시(Peter Tosh)는 이전의 밴드 동료였던 밥 말리(Bob Marley)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로 불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콤 엑스(Malcom X)로 불리고 있다.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자란 그는 다혈질적인 성격 때문에 늘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어린 시절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는 노래와 기타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초반 기타 선생님이었던 조 힉스(Joe Higgs)를 통해 밥 말리와 버니 리빙스턴(Bunny Livingston)을 만났다.
1962년 이들은 Junior Braithwaite, 백업 싱어인 베벌리 켈소(Beverly Kelso), 체리 스미스(Cherry Smith)와 함께 웨일링 웨일러즈(Wailing Wailers)를 결성하였다. 1965년 주니어, 베벌리, 체리가 떠나기 전까지 이들은 첫 싱글 'Simmer Down'을 비롯한 여러 곡을 히트시켰다.
1966년 밥 말리는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1967년 초에 자메이카로 돌아와 새로운 음악과 정신을 추구하게 된다. 피터와 버니는 자신의 리더를 따랐으며 이들은 곧 웨일러즈(Wailers)를 결성한다.
이전까지의 댄스 풍의 업 템포 스카(Ska)에서 벗어난 이들은 록 지향적인 행보를 시작하며 정치적, 사회적인 메시지를 가사에 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곧 그 지역의 수퍼스타가 되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 [Catch A Fire]를 1972년에 발매하였다. 다음 해에는 [Burnin'] 앨범이 발매되며, 1974년 피터는 팀을 떠난다.
팀을 떠난 그는 전의 밴드 동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피터 토시로 바꾸고 1976년 첫 솔로 앨범인 [Legalize It]을 발표하였다. 타이틀곡은 곧 마리화나 운동의 찬가가 되었으며 그의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가 되었다.
밥 말리가 온건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는 반대로 그는 위선적인 제도에 반발하며 격렬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구타로 생긴 얼굴의 상처를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다.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1977년 [Equal Rights]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가사 "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권리와 정의이다!"는 곧 하류 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이어서 그는 [Bush Doctor](1978), [Mystic Man](1979) 앨범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는 메인스트림에서의 성공을 바랐으나 밥 말리에 비하면 미미한 성공이었다.
1983년에는 [Mama Africa] 앨범이 발매되며, 1987년 [No Nuclear War] 앨범 발매 후 그는 자신의 집에서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