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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1:16
PFM(Premiata Fomeria Marconi) (쁘레미아따 포르네리아 마르꼬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58  


PFM(Premiata Fomeria Marconi) 


(쁘레미아따 포르네리아 마르꼬니) 

 

 

PFM(Premiata Forneria Marconi)은 클래식과 지중해의 서정적인 민속선율을 결합하여 1970년대 국제적인 명성을 누렸던 이탈리아의 아트 록 그룹이다.


'Appena un po(잠시후에)' 'Just look away'등으로 우리나라 아트 록 마니아에게도 많은 사랑받은 이들은 뉴 트롤스(New Trolls), 방코(Banco Del Mutuo Soccorso) 등과 함께 이탈리아의 진보주의 록 그룹을 대표함은 물론, 미국 시장에서 성공한 전무후무한 이탈리아 록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출발은 소박했다. 1968년 영·미 팝을 번안해 불렀던 비트 그룹 쿠엘리(I Quelli, 그들)가 그 모태. 쿠엘리는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지만 이들의 포부는 보다 컸다. 당시 부상하던 제스로 툴(Jethro Tull), 킹 크림슨(King Crimson) 등 재즈와 클래식의 구조미학을 접목한 프로그레시브 록 물결에 동참해 보려는 것. 이런 욕구는 달튼(Dalton) 출신의 재간꾼 마우로 파가니(Mauro Pagani, 바이올린, 플루트)가 가입하면서 가속화된다.


파가니의 가세로 플라비오 프레몰리(Flavio Premoli, 키보드, 보컬), 죠르주 피앗자(Ciorgio Piazza, 베이스,보컬), 프란츠 디 치오치오(Franz Di Cioccio, 드럼), 프랑코 무시다(Franco Mussida, 기타, 보컬)의 5인조 라인업을 갖춘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며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Premiata Fomeria Marconi : '기억하기 어려우면 그만큼 더 각인된다'는 모토로 일부러 어려운 이름을 선택한 것)로 그룹명을 변경하고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으로 탈바꿈한다.


PFM은 예스(Yes), 딥 퍼플(Deep Purple)등 슈퍼 그룹들의 이탈리아 오프닝 밴드로 명성을 쌓아갔고, 1972년의 비아레지오 페스티발(Viareggio Festival)에서 이탈리아 언론의 찬사를 끌어낸 뒤, 동년 루시오 바티스티(Lucio Battisti)가 설립한 신흥 레이블인 누메로 우노(Numero Uno)를 통해 데뷔 앨범< Storia Di Un Minuto(한순간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스튜디오 라이브 형식으로 녹음한 < Storia Di Un Minuto >는 'Impressioni di settembre'(9월의 인상), 'E'Festa(축제)'등 이탈리아 아트 록의 고전들을 배출하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듬해 출반한< Per Un Amico >(1973)에서는 이탈리아 심포니 록의 불후의 걸작 'Appena un po'와 'll banchetto'(만찬)'로 진보 음악 팬들을 녹아웃 시켰다.


이들에게는 더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PFM의 재능을 간파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and Palmer)의 그렉 레이크(Greg Lake)가 자신들이 설립한 만티코어(Manticore) 레이블을 통해 이들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킨 것.

'E'Festa'의 영어 판 'Celebration', 'Appena un po'를 개사한 'River of life'가 포진 된 세계 데뷔작< Photos Of The Ghost >(1973)는 미국 차트에도 랭크(180위) 됐을 정도로 성공했으며, 피앗자의 탈퇴로 베이스 주자를 파트릭 지바스 (Patrick Djivas)로 교체한 1974년 에는 < L'isola Di Niente (허무의섬) >와 영어판< World Became The World >가 거의 동시에 공개돼, 타이틀곡과 정감어린 발라드 'Dolcissima maria(영어판 : Just look away)'로 전 세계 아트 록 팬들을 감동시켰다.

확고한 지지기반을 구축한 이들은 1974년, 미국 공연의 열기를 담은 라이브 앨범< Cook (Live In USA) >(미국 150위), 이탈리어 버전 없이 공개한 < Chocolate Kings >(1975)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끌어냈으며, 미국, 일본, 영국에 이르는 대규모 공연마저 성공리에 마쳤다.


절정 끝에는 위기가 이어지는 법. 장기적인 투어에 지친 마우로 파가니가 탈퇴하면서 그룹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디스코 열풍과 프로그레시브 록 하향기 속에 공개한 < Jet Leg >(77) < Passpartu >(78)는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렸다. 멤버 교체 속에 간간히 투어를 통해 활동을 유지하던 그룹은, 결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암흑기였던 1980년대를 넘지 못하고 긴 동면에 들어갔다.

이들이 수면 캡슐에서 깨어난 것은 1997년 이었다. 프레몰리, 무시다, 지바스, 치오치오의 라인업(파가니만 제외한 1974년 진용)으로 부활한 PFM은 동년< Ulisse >(98)을 공개, 이탈리아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 금의환향을 했으며, 원기를 되찾은 이들은 새 천년에도 < Serendipity >(2000)를 발표한 뒤 월드투어를 펼치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빽판이나 원판을 통해 소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해오던 PFM은 전영혁, 성시완이 진행한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뉴 트롤스, 오잔나(Osanna)등과 함께 1980년 대 후반 이탈리아 아트 록 붐의 기수로 부상했으며, 2006년 5월 9일에는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 사상 최초로 내한 공연을 가져 국내 록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