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체크 P 
 Q 
 R 
 S 
 T 
 U 
 V 
 W 
 X 
 Y 
 Z 
어제 : 298, 오늘 : 443, 전체 : 342,805
 
작성일 : 20-02-06 11:45
Popol Vuh (포폴 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73  


Popol Vuh (포폴 부)
 

 
60년대 세계 대중 음악계는 미국과 영국의 주도하에 이끌어졌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물밀 듯이 밀려오는 문화공세를 여과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독일의 록 뮤지션들은 수준 높은 미국과 영국의 록음악을 모방하기에 급급하였고 이는 자국의 록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과 외면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히피 문화와 싸이키델릭 사운드가 만연하던 6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뜻 있는 음악인들을 중심으로 독일만의 독특한 정서와 창조적인 재능이 담긴 음악을 시도하였다. 포폴 뿌의 리더로서 20여 년간 그룹을 이끌어 왔던 플로리안 프리케(Florian Fricke)는 독일 록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의 하나로서 독일 진보 음악계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1944년 3월 23일에 출생한 그는 10대 시절에 음악 학교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였고 졸업 후 16세가 되던 60년대 초반에 단편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베르너 헤르조그(Werner Herzog)라는 영화 감독을 만나게 되어 사운드트랙을 자주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헤르조그 감독의 영화에 출연까지 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1942년 뮌헨에서 출생한 헤르조그 감독은 신(新) 독일 영화의 대표적인 거장으로서, 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음악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안 프리케와 같은 신념과 의지로 서로에게 절대적인 영감을 주고받고 있는 필생의 동반자이다.

플로리안 프리케는 과학자인 로버트 무그(Robert Moog)박사가 발명하여 과학 문명의 총아로서 음악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거대한 무그 신서사이저(Moog Synthesizer)를 구입하여 알프스 파발리아 지방의 산 기슭에 있는 오래된 집에 은거하면서 신서사이저 음의 창조에 열중하였다. 일반적으로 독일 신서사이저/일렉트로닉 계열의 창시자로서는 에드가 프로에제(Edgar Froese)가 이끌었던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이나 신서사이저 연주자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클라우스 슐츠(Klaus Schulze)가 알려져 있으나, 탠저린 드림은 활동 초창기에 무그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지 않았고, 원래 드러머였던 클라우스 슐츠 역시 플로리안 프리케가 사용하였던 무그 신서사이저를 구입한 후 전자 음악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플로리안 프리케야말로 독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진정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플로리안 프리케는 뮌헨 대학의 도서관에서 기이한 마야 문명의 고전을 번역한 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책의 제목에서 유래가 되어 포폴 뿌라는 그룹이 탄생된 것이다. 1967년 2월 그는 타악기 연주자인 홀거 트룰츠(Holger Trulzsch)와 건반 악기 연주자인 프랑크 피들러(Frank Fiedler)와 함께 포폴 뿌를 결성하여 무그 신서사이저음의 신비로운 사운드 창조에 몰두하다가 1971년에 이르러서 데뷔 앨범 [Affenstunde]를 발표하여 매스컴의 호평과 함께 독일 앨범 차트 10위까지 랭크되었다. 그가 무그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여 발표한 작품은 데뷔 앨범과 2번째 앨범인 [In Den Garten Pheraos] 그리고 친구인 헤르조그 감독의 부탁으로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 만들어 주었다가 1976년에 뒤늦게 발매되었던 [Aguirre] 등 3작품이다.

첨단 과학 문명의 산물로서 우주에 존재하는 어떠한 소리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다는 신서사이저 악기를 다루었던 초창기, 대부분의 연주가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우주적인 사운드의 표현에 주력하였던 것에 비해 플로리안 프리케는 독특하게도 신서사이저를 통하여 아름다운 자연과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묘사하려 했던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첨단 악기를 이용하여 자연으로 회귀시키려는 플로리안 프리케의 의지는 기계음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되면서, 그는 곧 무그 신서사이저를 포기하고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여 신을 찬양하는 음악을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1972년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후 플로리안 프리케는 "더 이상 무그 신서사이저를 연주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멤버 교체를 단행하여 코니 베이트(Conny Veit: 기타), 로버트 엘리스쿠(Robert Eliscu: 오보에), 클라우스 비스(Klaus Wiese: 타블라) 그리고 한국인 여성 보컬리스트 윤정(Yun Djong)을 라인업으로 새로운 포폴 뿌를 출범시킨다. 새로 가입한 보컬리스트 윤정은 바로 그 동안 이데올로기 문제로 우리 나라에서의 활동이 금지되었다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해금되어 국내에서 새롭게 평가받고 있는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씨의 딸이다.


독일 신비주의 음악의 교본격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포폴 뿌의 세 번째 앨범 [Hosinna Mantra]는 신서사이저를 버린 플로리안 프리케의 영롱한 피아노 소리와 여성 가수 윤정의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어쿠스틱한 사운드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미사곡으로서 오늘날까지 프로그레시브 매니어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명반이다. 이듬 해인 1973년에 포폴 뿌는 다니엘 피휄셔(Daniel Fichelscher)라는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여 보다 클래식적이고 세련된 편곡이 돋보이는 [Seligpreisung]을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에는 윤정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1974년 초에 플로리안 프리케와 다니엘 피첼셔 그리고 윤정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의 탈퇴로 인하여 트리오 체제로서 다섯 번째 앨범 [Einsjager & Siebenjager]를 1975년에 발표하여 이태리의 음악 잡지인 Muzak의 비평가들에게 '올해의 최고 음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같은 해에 발표된 [Das Hoheilied Solomos]는 윤정의 주옥같은 음색이 빛을 발하고 있으며, [Hosianna Mantra]와 더불어 플로리안 프리케의 종교적인 염원이 가장 진하게 표출되었던 작품이다. 플로리안 프리케가 표현하려는 신이란 기독교적인 특정한 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그리는 보다 자유롭고 포괄적인 의미의 신이라고 한다.

한국인 여성 보컬리스트 윤정은 [Hosianna Mantra]를 시작으로 1976년에 발표된 7번째 앨범 [Letzte Tage-Letzte Nachte]까지 포폴 뿌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기간은 포폴 뿌의 음악적인 완성도나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최절정의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마도 당시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하였고 동서양을 막론한 자신만의 신을 찬양하려는 플로리안 프리케에게 마치 천상의 소리와도 같은 하이 소프라노 음색을 지닌 동양인 여성 싱어 윤정의 존재는 그의 종교적인 염원과 음악을 표출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룹을 탈퇴한 윤정은 1979년에 발표된 포폴 뿌의 13번째 앨범인 [Die Nacht Der Seele]에 잠시 참여하여 보컬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이후 그녀에 대한 활동 소식은 전해진 것이 없다. 하지만 록의 르네상스 시대로 평가되는 1970년대 초중반에 외국의 대중 음악계에서 명성을 떨친 최초의 우리나라 여성 보컬리스트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1976년 이후 약 3년간 플로리안 프리케는 유프라테스 강과 히말라야와 티벳 지방 등 중앙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어 아시아의 토속적인 사운드에 몰두하여,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보다는 친구인 베르너 헤르조그 감독의 영화에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는 등 음악적인 재충전을 가졌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태리의 PDU 레코드사의 요청으로 포폴 뿌의 9번째 앨범인 [Yoga]를 1977년에 이태리 내에서만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은 인도 음악 자체를 수록한 것으로서 특이하게도 플로리안 프리케를 비롯하여 포폴 뿌의 멤버들은 직접 연주에 참여하지 않고 대부분이 인도 출신의 뮤지션들에 의해서 연주되어진 작품이다.


1976년에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던 베르너 헤르조그 감독의 영화 '유리 마음'에서 사운드트랙을 담당하였던 플로리안 프리케의 작품이 프랑스에서는 'Coeur De Verre', 그리고 독일에서는 'Herz Aus Glas'라는 타이틀로 1977년에 재발매되었다. 1978년에 플로리안 프리케와 다니엘 피휄셔는 Brain 레이블을 통하여 [Bruner Des Schattens-Sohne Des Lichts]를 발매한 후 그 해 역시 베르너 헤르조그 감독의 작품인 'Nosferatu'의 사운드트랙을 발표하였다.


1979년에 발표된 [Die Nacht Der Seele]는 포폴 뿌의 중반기 분기점을 이루는 작품으로서, 3년간의 음악적 구도 기간을 마친 플로리안 프리케는 "나는 완전히 자각된 음악을 새로운 감각으로, 살아있는 어떤 것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하고 옛 파트너인 윤정과 새롭게 영입한 여성 가수 레나테 크나우프(Renate Knauf)를 같이 참여시킴으로써, 포폴 뿌의 보컬을 담당하였던 신, 구세대의 교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포폴 뿌의 정식 보컬리스트로서 자리잡은 레나테 크나우프는 기독교를 소재로 한 음악부터 세속적인 원시 종교를 상기시키는 음악성을 창출할 때마다 토속적이고 힘있는 목소리로써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1년에 발표된 [Sei Still Wisse Ich Bin]은 플로리안 프리케가 직접 제작한 비디오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음반으로서 클라우스 슐츠가 운영하는 레코드사인 I.C. 레이블을 통하여 1981년에 발매되었고, 또한 헤르조그 감독에게 1981년 칸느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주었던 영화의 사운드트랙인 [Fitzcarraldo]를 1982년에 발매하였으며, 1983년에 발매된 [Agape Agape]에서는 기존의 멤버와 코니 베이트, 프랑크 피더 등 옛 동료들을 규합하여 오래간만에 호흡을 맞추는 등 황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후로 플로리안 프리케는 무슨 이유인지 일체의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 생활을 하다가 2년간의 공백 끝에 순수하게 플로리안 프리케의 피아노를 위주로 한 [Spirit Of Peace]라는 앨범을 1985년에 발표하였다. 그 후 1987년에 헤르조그 감독의 영화 'Cobra Verde'의 사운드트랙을 발매하였고, 최근에는 [Spielt Mozart]와 [For You And Me]를 발표하는 등 끊임없는 작품 및 연주 활동을 통하여 오늘날까지도 독일 진보 음악계의 상징적인 뮤지션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무그 신서사이저를 이용하여 발표한 초창기 3작품을 제외하고, 포폴 뿌 즉 플로리안 프리케가 추구하였던 자연과 신비 그리고 종교적인 염원을 테마로 한 음악성은 큰 변화 없이 일관되어 왔기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의 고도의 집중력이 아니고는 상당히 따분하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 구도자로서의 플로리안 프리케의 천부적인 재능과 순수한 열정으로 이룩된 그의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실이라는 잔인한 파고 앞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마치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위안과 경건함을 안겨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