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ishead (포티셰드)
시끌벅적한 홍보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벅인 예를 제시한(물론 그만큼 실력을 갖춰야 하지만)포티셰드의 이름이 생소하더라도 모화장품 회사의 광고배경음악으로 나온 'Wandering Star'는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직도 아리송하다면 흰색 슬리브리스 원피스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서있는 모델이 원반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광고, 기억나는가? 그때 흘러나왔던 마치 진동음처럼 들리는 사운드와 저음의 속삭이는 보컬의 매력을 궁금하게 생각했는가? 이들이 바로 매시브 어택, 트리키와 함께 브리스톨 트로이카를 구성하는 포티셰드이다.
이들은 쿨재즈와 애시드 하우스, 그리고 영화적인 분위기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 매혹적인 다크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포티셰드의 프론트우먼은 금발의 단발머리와 헐렁하고 수수한 옷차림의 베쓰 기븐스. 그는 제프 배로우(Geoff Barrow)를 만나기 전 브리스톨 펍(Pub)의 로컬밴드에서 노래하던 보컬리스트로 이미 많은 밴드에서 경력을 쌓아온 실력파였다. 그 당시 제프는 밴드를 만들기 위해 50명이 넘는 보컬리스트를 오디션했지만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찾지 못하다가, 91년 지방의 실업자 사무소에서 우연히 베쓰를 만났고 비슷한 음악적 이상을 갖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년 뒤, 그들은 본격적으로 밴드를 시작했다.
포티셰드는 비록 제프가 만들고 그의 엄청난 실력에 의해 돌아가고는 있지만 베쓰의 드라이하고 어두운 보컬이 아니라면 지금의 그들이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녀의 보이스는 매력적이다. 그녀가 노래할 때면 있는 힘을 다해 얼굴에 주름을 만들어가며 감정을 잡아가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때 플리트우드 맥이나 재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는 그녀의 가늘고 여린 음색은 제프의 스크레치와 각종 샘플링에 파묻히지 않고 끊어질듯 말듯 이어진다.
이들은 앨범을 내기 전에 단편영화인 [To Kill A Dead Man]을 만들고 사운드트랙을 제작해 홍보용으로 돌리기도 했는데 여기서 제프와 베쓰는 60년대 스파이로 등장한다. 뮤지션의 홍보영화는 매우 이색적인 방법이었고 이것이 Go! 레코드사의 주목을 받았다. 얼마 후, 포티셰드는 데뷔작 [Dummy] (94)를 발표했다. -모조 헤로인의 의미가 있는 Dummy는 이들의 음악과 무관하지 않은 기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앨범은 매시브 어택의 음악을 발전시켜 트립합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머큐리 뮤직 프라이즈에서 94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판매고는 기대이하였다. 다행히 미국에서 언더그라운드 히트앨범이 되면서 15만장이 팔려나갔고 이후 셀프타이틀 앨범 [Portishead](97)로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Dummy]에서 이어지는 트립합의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적이고 단순반복적이며 가사도 없는 테크노가 라이브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의심하는데 단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테크노도 얼마든지 라이브에서 청중들을 매료시킬 수 있으며 충분히 웅장할 수 있다. 라이브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포티셰드가 작년에 3집으로 내놓은 [Portishead: Roseland NYC Land]는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결과는 대만족. 35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제프의 완벽한 시스템과 디제잉 솜씨, 그리고 베쓰의 흡입력있는 보이스는 청중을 매료시켰다. 비디오로도 나와있는 포티셰드 뉴욕 로즈랜드홀의 라이브는 한번쯤 감상할 만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베쓰는 포티셰드의 음악에 영혼을 불어넣었다'는 제프의 말대로 베쓰의 우울하고 절제된 목소리는 제프와 애드리안 어틀리(Adrian Utley: 재즈 기타리스트 겸 베이시스트), 데이브 맥도널드(Dave McDonald: 드럼, 퍼쿠션)와 함께 포티셰드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