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Ashcroft (리처트 애시크로프트)
#이제 모두 버리고 홀로 서는 거야
영국은 해마다 국가를 대표하는 록그룹을 배출해왔다. 1994년은 블러였고, 1995년은 오아시스, 1996년은 프로디지였다. 그리고 1997년의 주인공은 더 버브(The Verve)였다. 이해 발표된 곡목처럼 웅대한 심포니 곡조의 'Bittersweet symphony'는 영국을 넘어 미국시장도 흔들어놓았다. 당시 영국 음악언론들은 오아시스 저리 가라할 정도로 난리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룹의 고질적인 내부정치의 혼돈으로 끝내 더 버브는 해산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러나 더 버브에는 간판 리처트 애시크로프트가 있었다. 잠시 휴지기를 거친 뒤 그는 오래 전부터 노려온 독립을 단행해 솔로 앨범과 함께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홀로 된다는 것의 '즐겁고도 괴로운' 역설의 미학이 있다. 영원한 방랑자가 들려주는 '비터스위트' 스토리!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지만 영국 록밴드 더 버브의 행보는 언제나 환희와 고통이 동시공재(同時共在)해왔다. 스팅으로 하자면 싱크로니시티. 그것은 가히 더 버브가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라고 하기 이전에 인생의 단면을 조명하게 하는 성질의 그룹이라는 착각을 부를 정도였다.
우선 기쁨은 1997년 하반기의 스매시 'Bittersweet symphony'였다. 이 곡은 영국 차트 2위로 치솟으면서 오아시스가 좋아하는 밴드, 그러나 영국 언론이 평가 절하했던 밴드라는 종래의 이분법을 완전 종식시키는 후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전문지 <복스>는 "1997년은 더 버브의 해였다"고 단정지었다. 그 해 12월 역시 음악잡지 <모조>가 독자 설문을 통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곡'에도 이 곡은 당당 60위에 올라 당시 그룹의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보통 최신 히트곡은 이런 조사에서 뽑히지 않는다. H.O.T라면 몰라도).
이 곡의 인기는 비단 영국만 떠들썩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급기야 미국 시장도 공략해 오아시스 외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전미 싱글차트마저 정복하면서 꿈에 그리던 월드 스타덤을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내놓은 그들의 앨범 <Urban Hymns>는 'The drugs don't work'와 'Lucky man' 두 곡이 연속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영국에서만 19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미국에서도 100만장을 쾌척해 세계적으로 400만장이라는 오아시스 이후의 최대실적을 쌓아올렸다.
#환희와 고난이 동거했던 '비터스위트' 그룹생활
그러나 이런 석세스 항로에 커다란 암초가 걸렸다. 그토록 호평을 얻은 시그니처 송 'Bittersweet symphony'가 롤링 스톤스의 초기 걸작인 'Last time'의 오케스트라 버전에 대한 저작권 침해로 결론이 나버린 것이다.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더 버브에게는 한푼의 로열티도 돌아오지 않았다. 반은 믹 재거, 반은 키스 리처드의 것이었다.
분명 그 곡의 네 마디를 반복 사용하긴 했지만 그토록 멋지게 재창조해낸 리처드 애시크로프트(Richard Ashcroft)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억울한 나머지 자조하듯 'Bittersweet symphony'를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20년만에 쓴 베스트 송"이라고 투덜거렸다. 씨름 잘해도 등허리에 흙 떨어질 날 없다고 했던가. 비터스위트, 정말 곡 제목대로 '달콤하고도 쓰디쓴' 과정이었다.
밖에서만 흙이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룹 내부의 정치도 크게 휘청거렸다. 앨범 'Urban Hymns'가 성공을 거두자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기타리스트 닉 매케이브(Nick McCave)의 불안한 잠정휴전도 끝나 '유서 깊은' 갈등이 재연되었다. 주도권 쟁탈에서인지, 본래가 물과 기름 관계인지 모르지만 그룹 내에서 싱어와 기타리스트는 늘 긴장관계에 있다. 그리고는 얼마 못 가서 갈라서고 곧 두 사람은 솔로 앨범을 내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조니 마와 모리세이가 충돌한 스미스(The Smiths), 이언 브라운과 존 스콰이어가 신경전을 벌인 스톤 로지스(Stone Roses), 그리고 갤러거 형제의 갈등으로 얼룩진 오아시스(얼마 전 노엘이 그룹을 박차고 나갔다)를 보라. 헌데 이것은 묘하게도 영국그룹의 '전통'이기도 하다. 더 버브도 성공 뒤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은 서로 혐오해왔다는 것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룹은 해체라는 영국밴드 역사가 확립한 코스를 택했다.
애시크로프트와 매케이브 간의 적의는 전에도 그룹을 소용돌이치게 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위간(wigan)에서 결성되어 1993년 첫 앨범 <A Storm In Heaven>과 2년 뒤 <A Northern Soul>을 내면서 불거진 두 사람의 갈등은 닉 메케이브의 이탈로 이어졌다. 애시크로프트는 대타로 스톤 로지스와 시호시스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와 스웨이드의 기타주자 버나드 버틀러를 연이어 교섭하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도리 없이 그는 '처음으로 돌아가' 메케이브에게 롤백을 호소했고 흔쾌히 돌아온 그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만든 앨범이 <Urban Hymns>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당시에 왜 불화를 겪었는지, 또 어떻게 다시 합치게 되었는지 자세한 설명을 거부해 지금도 실상은 안개에 휩싸여있다. 다만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 닉 매케이브의 차이가 애시크로프트가 '음악산업을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매케이브는 '그것을 증오하는' 정도라는 점이 확인될 따름이다. 이러니 애시크로프트가 2집을 만들 시점에서부터 자신의 솔로 앨범을 만드는 것인지, 더 버브 앨범에 참여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체(正體)의 위기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의 솔로 앨범은 과연 어떠한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그의 사고체계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애시크로프트는 17-18세기 경 신비적인 종교개혁가들의 비밀결사회로 알려진 '장미십자회원' 출신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정신적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어떤 것의 미래를 상상으로 축조해 미래를 자기 것으로 조절하는 의식이었다. 가령 어떤 모르는 노래를 듣더라도 이른바 시각화(visualization)과정을 통해 그것이 5년 전에 라디오에 흘러나왔는지 10년 전에 나왔는지를 즉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친의 죽음 후 방향감각을 상실한 어린 그에게 양부의 가르침은 위안을 넘어 가치관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미래를 안다는 것' '마음만 갖추면 인간은 날 수 있다'는 둥의 얘기는 타인에게는 황당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그가 영국언론으로부터 '매드 리처드'로 불리며 약간은 정신이상자로 취급당한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나 애시크포프트는 확고하다. "누구든지 정말로 믿는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버브의 성공도 그의 시각화에 따는 정신적 의지의 결과. 적어도 애시크로프트는 그렇게 믿는다.
#상상과 믿음의 패러다임이 구현된 솔로 앨범
따라서 더 버브의 해산은 아쉬운 또는 자연스런 과정일 수 있다. 여기에는 표면적으로는 애시크로프트의 미래에의 불안과 우려, 좌절 그리고 낙관과 희망이 뒤엉켜있는 듯, 한마디로 그의 상징이 된 비터스위트처럼 보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래를 자기 것으로 다루려는 확고한 믿음이 저류(低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제해 앨범의 첫 곡이자 싱글로 발표된 'A song for the lovers'를 들여다보자.
'우린 오늘밤 해낼 겁니다. 대기의 무엇인가가 시간이 됐으며 그래서 우리는 잘해낼 거라고 내게 말하는군요. DJ여 연인을 위한 노래를 들려줘요…. 기다리고싶지 않아요. 신이여, 난 인생 내내 방황해왔어요. 그러나 난 너무 늦었고 무섭습니다. 당신은 모르시나요. 난 어떤 미지의 세계로 열차처럼 움직이고 있어요, 난 승차권이 없어요. 그러나 난 갈 거예요…'
그의 상상 패러다임은 '넌 내가 수면할 때도 내 마음 속에 있다'는 'You on my mind in my sleep'에도 나타나고 '내 마음은 느린 것'이라는 'Slow was my heart'에도 엿보인다. 그가 달려가는 곳은 'Crazy world'로 그려진 현실 삶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자신이 만든 별종의 세상 즉 'Brave new world'다.
어렵지 않은 어휘로 구성된 가사로 잘못 들으면 보편적 스탠더드 팝의 노랫말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마인드에 천착한 애시크로프트 독자적 세계의 시어(詩語)들이다. 이 점을 놓치면 앨범에 대한 접근은 애초부터 빗나간다.
음악은 'Bittersweet symphony'를 연상시키는 첫 싱글부터 고급스런 수준이다. 위에 나열한 곡들 모두가 단번에 청각을 자극하는 우수 '팝 소품들'이다. 특히 'Brave new world' 'Crazy world'와 'C'mon People(We're making it now)'는 과연 자랑스런 비틀스의 후손임을 고한다고 할 만큼 선율이 우아하다. 이 정도면 무난한 데뷔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버브 팬들은 물론 'History'나 'Bittersweet symphony'의 감동에 참여한 바 없는 문외한이 들어도 만족할만한 앨범이다. 그룹시절에 굳힌 심포니형 로큰롤, 길고 느리면서 스트링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획득한 웅장미가 전 수록곡을 관통한다.
다만 문제는 <롤링스톤>이 재단한대로 '절정의 쾌감'을 제시하지 못하고있다는데 있다. 그저 무난함으로 일관해 유려한 흐름을 반전시키는 확실한 기타 리프, 멜로디, 코러스 등 더 버브 예의 '총기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이것으로도 좋지만 패턴에 익숙한 팬들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롤링스톤의 지적은 새겨둘 만하다. "딴 영국의 록스타처럼 애시크로프트도 그의 신경을 건드려 약간의 마찰을 불러올 음악동료가 필요하다."(유사 닉 메케이브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리처드 애시크로포트는 그러나 분명히 초연하다. 장기 레이스의 초반 출발상황으로 솔로활동의 운명 전체가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 '내 마음은 느리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의 비주얼라이제이션이 언젠가는 미래의 광채를 품게 해줄 것이다. 그는 되뇐다. 미래는 항상 즐겁고도 괴로운 이중의 얼굴이라고. 그리고 이제 난 막 홀로 섰을 뿐이라고. 승차권이 없어도 그는 열차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