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nie Milsap (로니 밀샙)
1950년생인 로니 밀샙(Ronnie Milsap)은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로빈스빌에서 태어난 불구의 컨츄리 싱어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자신의 그러한 신체결함으로 인해 다소 그늘진 생활을 했던 로니 밀샙은 음악에 많은 관심을 쏟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고향의 맹인 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그 학교의 음악 선생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 등의 악기와 이론을 익히면서, 12년간에 걸친 클래식 공부를 했다. 바하와 모짜르트 등의 고전 음악가의 일대기와 작품을 열심히 익히면서도 컨츄리 음악을 즐겨 연주했다.
그러한 컨츄리 음악의 도취는 고교시절에는 극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기로 하고, 1969년에 애퍼리션스(Apparitions)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뮤지션 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로니 밀샙은 멤피스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컨츄리와 록 재즈등의 복합적인 리듬을 구사하면서 연주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대중성의 결여로 대중들에게 외면 당하곤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멤피스에 소재한 몇몇 레코드사를 통해 앨범과 싱글을 발표했다.
그 당시 발표한 곡들중에 스캡터(Scepter) 레코드사에서 발표했던 싱글 <Denver>와 <Loving You Is A Natural Thing> 등이 히트되어 무명의 그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정립되어 있지 않은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만족치 않고 있었으며, 자신이 추구하여야 할 음악은 컨츄리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1973년 4월, 컨츄리의 고장 내쉬빌로 향했다.
내쉬빌에 진출한 로니 밀샙은 명 프로듀서인 탐 콜린스의 도움으로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데뷰 앨범 「Where My Heart I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로니 밀샙의 명성을 알리는 계기의 히트 앨범이 되었으며, 그 뒤로도 계속해서 「(All Together Now) Let'S Fall Apart」와 「It Was Almost Like A Song」 등의 앨범을 계속 발표해 나가면서 명성을 쌓았다.
클래식에서 받은 음악적인 재능과 재즈와 블루스 스타일의 절묘한 창법은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집중시키기 충분했으며, 맹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나가던 그는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수많은 컨츄리 싱글을 발표했다.
<The Girl Who Waits On Tables>, <Pure Love>, <Please Don't Tell Me How The Story Ends>, <Legend In My Time>, <Daydreams About Night Things>, <Let My Love Be Your Pillow> 등의 싱글이 당시 로니 밀샙이 발표하여 히트시켰던 곡들이다. 특히 <Please Don't Tell Me How The Story Ends>는 1974년도 그래미상의 최우수 컨츄리 남성 가수상을 획득하게한 싱글이기도 하다. 또한 1977년에 거행된 20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앨범 「(I'm A) Stand By Woman Man」으로 다시한번 최우수 컨츄리 남성 가수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같은 해에 컨츄리 뮤직 상(CMA)에서는 앨범 「Ronnie Milsap Live」로 최우수 앨범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78년 2월에 발표한 앨범 「It Was Almost Like A Song」은 자신의 첫번째 골드 앨범으로 기록하였으며, 「Only One Love In My Life」에서 싱글 커트된 타이틀 송은 컨츄리 챠트 정상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싱글 <What A Difference You Made In My Life>는 챠트 넘버원 송이 되었다. 1981년에는 <Smokey Moutain Rain>을, 1982년 초반에 발표한 <No Getting Over Me>를 히트시켰으며, 그해 말 경에는 앨범 「Inside」를 발표해, 60년대 아티스트 퍼시 슬레이지의 히트 곡 <Any Day Now>를 다시 리바이벌해서 불렀는가하면 재즈 음악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I Love New Orleans Music>을 불러 컨츄리 뮤직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능통함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