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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9 18:25
Roxy Music (록시 뮤직)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91  



Roxy Music (록시 뮤직)

 

 
70년대는 록 음악의 춘추전국시대였다. 다양한 장르의 록 음악이 풍성히 공존한 이 시기의 음악계는 '자신의 개성'과 '자신만의 표현 영역'을 창조하는 데 몰두했다. 개인주의로 일관된 대중음악은 역시 수많은 장르들이 핵 분열하듯 복잡하게 지형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정신은 퇴색되고 스타일이나 예술성에만 집착해가던 70년대 록 음악 씬을 두고 정신은 없고 기교에만 집착한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도 있었지만 음악 표현 영역이나 연주에 있어선 이 때만큼 일취월장한 시기도 드물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창궐했던 아트 록(Art Rock)은 70년대 내내 강세를 띄며 영국을 중심으로 서서히 팝 차트에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그리고 제네시스.... 록은 어느덧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진지해져있었지만 록 음악 특유의 비판성과는 거리를 둔 채 예술성에만 몰입해 갔다.


록시 뮤직(Roxy Music)의 등장은 분명 아트록의 창궐이라는 대세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활동방식은 기존 아트 록 밴드들의 그것과 뭔가 달랐다.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의 사용이라든지 대위법이 감지되는 혁신적인 연주는 기존 아트 록의 관행과 동일했지만, 훅(hook)이 감지되는 선율감이 압권인 '고급스런 팝'을 꾸준히 발표한다. 싱글 'Virginia plain'(1972)을 영국 차트 10위에 올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Love is the drug'(1976). 'Dance away'(1979), 'Over you'(1980), 'Avalon'(1982), 'More than this'(1982)등을 모두 브리티시 차트 Top 10과 미국 빌보드 차트 Top 40위권에 진입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실험성과 분노로 점철된 완성도 있는 대곡으로도 주목받았다. 하드 록 성향의 거친 기타 리프가 휘몰아치는 밴드 최고 걸작 <Country Life>(1974)를 비롯해 <For Your Pleasure>(1973), <Stranded>(1973), <Siren>(1975)은 모두 영국 앨범 차트 10위권에 드는 대중성을 얻은 동시에 록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추종을 받는 70년대 록 음악 명반 대열에 끼는 수작들이다. 탄탄한 곡 구성력과 기세등등한 연주가 압권인 러닝타임 7-8분대의 대곡들인 'Bogus Man'(1973), 'The thrill it of all'(1974), 'Psalm'(1973)등은 아트 록 매니아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대중들은 'Virginia plain' , 'Love is the drug', 'Avalon'으로 이들의 존재를 알았지만 록 음악 수절파들은 <Country Life>나 <Siren>같은 앨범으로 그들을 추앙했다.


밴드는 팀의 수장 브라이언 페리가 1971년 브라이언 이노를 만나며 시작된다. 소울과 락 앤 롤, 그리고 비틀즈 풍의 세련된 팝 음악에 경도 되 있던 브라이언 페리는 얼마 후 브라이언 이노를 통해 신시사이저가 주조하는 전자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 이듬해 기타리스트 필 만자네라와 색스폰 주자 앤디 마케이를 만나며 밴드의 위용을 갖추기 시작한다. 록, 팝, 전자 음악, 여기에 앤디 마케이의 코 끝이 찡해오는 색스폰 연주가 가미되며 무드를 돋우는, 흡사 우리 내 식으로 얘기하면 카바레 뽕 사운드(?)까지 동원하며 서로 다른 음악적 자양분을 내세운 이들의 음악은 밴드라는 화학작용을 통해 지극히 예술적인 내공이 느껴지는 통속적인 팝 음악을 양산한다.


1972년 이들이 발표한 데뷔 작 <Roxy Music>로 베일에 가려있던 그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발매 동시에 브리티시 앨범 차트 10위에 등극한 이들의 데뷔작은 짙은 화장과 요란한 분장을 하고 나와 청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글램 록의 선두주자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고 그들은 요염한(?) 포즈를 한 여자 모델들이 매번 그들의 앨범 자켓 사진으로 등장해 더욱 화제였다.

대중성과 실험성을 한데 아우른 독창적인 사운드는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여기에 3류 통속 소설에서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을 떠오르게 하는 통속적인 가사는 이들의 현란하고 세련된 연주와 확연히 구별되었다. 재기발랄한 브라이언 페리의 보컬, 필 만자네라의 불끈거리는 기타솔로, 브라이언 이노의 가공할 만한 신시사이저 주조술, 앤디 마케이의 중독성 있는 색스폰 솔로는 앨범에는 실리지 않았던 첫 싱글 'Virginia plain'의 성공(영국 싱글 차트 10위)을 만들어내며 영국과 미국 대륙에 그들의 존재를 확연히 부각시켜주었고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 싱글'로 록 비평가들로부터 인정받는다.


Virginia plain'에 이은 싱글 'Pyjamarama'(1973)를 성공시킨 후 두 번째 앨범 <For Your Plaesure>는 싱글 위주로 나갔던 전작과 달리 이노와 페리의 공력이 극점에 달한 앨범이었다. 특히 9분 여에 달하는 'Bogus man'과 같은 곡은 페리와 이노 사이의 음악 노선의 차이점이 극렬히 대비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으로 남을 걸작이었지만,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 이렇다할 관심을 끌지 못했고 상업적 실패를 맛본다. 이로 인한 이노와 페리 사이의 불거진 불화는 결국 이노의 팀 탈퇴로 이어진다(이듬해 그는 솔로로 데뷔, 이후 엠비언트 음악의 대가이자, 명 프로듀서로의 길을 걷게 된다.)


이노의 탈퇴로 '실험성'이라는 한쪽 날개를 잃어 잠깐 기우뚱거린 밴드는 그러나 팝/록 사운드로 일관된 세 번째 앨범 <Stranded>(1973)를 발표, 그들의 첫 영국 앨범 차트 1위로 등극하며 이런 불안을 종식시킨다. 페리는 자신의 솔로 앨범 <These Foolish things>를 같은 해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했고, 밴드의 사운드는 페리의 노선대로 필 만자네라의 화려한 기타 솔로와 자신의 세련된 피아노 사운드, 앤디 맥케이의 최류성 색스폰 연주가 한층 부각되며 'Mother of pearl' , 'Street life'처럼 한층 스트레이트한 록 음악을 선보인다.


매년 꾸준히 발표하는 앨범마다 브리티시 앨범 차트 10권에 들었던 이들은 이듬해 발표된<Country life>(1974)로 창조력이 정점에 달한다. 지금까지도 그들의 대표곡으로 칭송되는 'The thrill it of all'이 앨범의 시작을 알리며 쉴세라 연달아 포진된 'All I want is you'와 'Out of the blue', 'Prarie rose' 같은 곡은 이들의 연주에 가장 거친 느낌을 대변해주는 곡들이다. 앨범은 유난히 하드한 면모와 그들이 추구해오던 우아한 팝/록 사운드를 온전히 융화해 낸 수작으로 거의 전 수록곡이 주목받았고 커버에 등장한 농염한 모습의 여자 모델들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앨범이다(직접 확인해보시라!). 또한 앨범 <Country Life>은 처음으로 미국 앨범 차트 Top40에 들어가면서 페리가 그토록 원하던 미국 진출의 성과도 획득한다.


이듬해 발표한 앨범 <Siren>로 밴드는 대중적인 스포라이트를 한껏 받는다. 디스코 리듬을 사용해 이름처럼 묘한 중독성을 풍기는 그들의 최고 히트곡 'Love is the drug' 와 'Both end burning'으로 밴드는 어느덧 초기의 아트-록 의 면모보단 팝-록 그룹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페리의 보컬은 소울 가수처럼 능숙한 크루닝을 뽐냈고, 밴드의 연주는 어느덧 화려한 솔로보다는 페리의 보컬을 보좌하는 반주에 가까워져있었다. <Siren>은 그들이 원래 추구해왔던 아트 팝의 면모가 한층 대중적으로 어필된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할만한데, 이런 밴드의 '고급스런 팝 음악'의 전형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며 향후 80년대 초 팝 음악의 대세를 잡은 브리티시 모타운 사운드나 뉴 로맨틱스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준다.


밴드는 <Siren>을 기점으로 멤버들 각자가 솔로 활동의 들어가며 잠시의 활동 휴지기를 맞는다. 그들의 첫 공식 라이브 앨범<Viva!>(1976)외엔 약 3년 동안 공백기를 갖게 된 밴드는 1978년 가을, 페리를 위시해 필 만자네라, 앤디 멕케이, 폴 톰슨 기존 멤버를 주축으로 새로 영입된 키보디스트 폴 카랙으로 제 3기 록시 뮤직은 가동된다.


밴드의 활동 재개와 함께 발표된 <Manifesto>(1979)는 디스코 리듬이 대폭 수용되며 그들의 이전 앨범들보다 접근하기가 수월한 앨범이었고, 덕분에 싱글로 커팅 된 'Dance away'가 미국 팝 차트 23위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둔다. 허나 1980년 폴 톰슨이 교통사고로 팀을 탈퇴하고 밴드는 3인조로 재편되며 <Flesh + Blood>를 발표한다. 앨범은 <Stranded>에 이어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싱글 'Over you'가 브리티시 top10과 미국 빌보드 Top 차트 40위권에 드는 성과를 거둔다. 이듬해인 1981년, 광적인 팬이 쏜 흉탄에 쓰러진 존 레논을 기리며 헌정한 싱글 'Jealous guy'로 밴드는 그들의 첫 브리티시 싱글 차트 1위로 등극되는 영광을 맛본다.


1982년 이들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이 된 <Avalon>은 미국에서 첫 골드를 기록하며 수록 곡 'More than this' 와 'Avalon'이 인기를 얻으며 앨범은 브리티시 차트 3주간 1위, 미국 앨범 차트 27위까지 오른다. 밴드의 최고의 성공작이라 불릴만한 <Avalon> 10여년이 넘는 밴드 경력을 통해 고집스래 추구한 '아트 팝'의 진수를 담아낸 밴드 최후의 역작이 되었다.

밴드는 1983년 'Avalon tour'를 끝으로 해산을 맞는다. 이후 브라이언 페리는 왕성한 솔로 활동을 보이고 필 만자네라와 앤디 맥케이는 '익스플로러'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