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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21
Soundgarden (사운드가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1  



Soundgarden (사운드가든)

 

 
사운드가든(Soundgarden)은 1984년에 시애틀에서 결성되어 1997년 4월 9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바로 이 점, 시애틀 출신이라는 태생적 배경 때문에 그런지(Grunge)의 카테고리에 소속되었지만 사운드가든의 음악적 뿌리는 어디까지나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권 안에 있는 헤비 메탈이었다. <스핀>지가 이들을 '메탈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탈 밴드'라 평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즉, 사운드가든이 그런지로 분류되는 것은 음악적인 이유보다는 성장 스토리에 기인한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밴드의 전형적인 경력 쌓기라 부를만큼 점진적인 과정 속에 슈퍼 밴드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인 킴 테일(Kim Thayil)과 베이시스트 히로 야마모토(Hiro Yamamoto) 그리고 브루스 파비트(Bruce Pavitt)는 워싱턴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언더그라운드 음악 신에 투신했다. 후에 파비트는 저 유명한 <서브 팝(Sub Pop)> 레이블을 설립하며 비즈니스로 방향을 선회했고 야마모토는 친구인 크리스 코넬과 그룹 결성의 의지를 다졌다. 여기에 킴 테일과 드러머 맷 카메론(Matt Cameron)이 합류하며 공식적으로 사운드가든이 발족했다.


다음 수순은 예상대로였다. 친구 파비트가 세웠던 서브 팝과 계약한 사운드가든은 1987년과 1988년 EP <Screaming Life>와 미니 앨범 <FOPP>을 연속으로 내놓았다. 두 작품으로 음악성을 인정받은 넷은 수많은 메이저 음반사들의 유혹의 손길에도 불구, <SST>와 손잡고 <Ultramega OK>를 1988년 말에 발매했다. 앨범은 얼터너티브와 메탈 양진영 모두로부터 대환영을 받는 성공을 거두었다.


<A&M>으로 배를 갈아탄 뒤 발매한 <Louder Than Love>(1990)는 밴드 역사상 중요한 순간을 일궈낸 수작이었다. <그래미>에 노미네이션 되는 쾌거를 이룩한 것.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멤버 모두를 자신감에 충만케 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운드가든은 전국적인 명성을 확보해 나갔다.


아쉽게도 시련은 바로 이즈음에 찾아왔다. 오랜 음악 동지였던 야마모토가 탈퇴하게 된 것이다. 너바나(Nirvana)의 기타리스트였던 제이슨 에버맨(Jason Everman)이 공석을 잠시 메꾸웠고 이후 벤 셰퍼드(Ben Shepard)가 합세하며 다시 4인조로서의 위용을 갖추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뒤, 1991년에 등장한 <Badmotorfinger>는 불운한 음반이었다. 초반에 앨범 차트 39위까지 오르며 선전하는가 했지만 같은 해의 혁명적 명반이었던 너바나의 <Nevermind>에 밀려 빛을 잃고 말았다. 허나 현재까지 이 앨범을 밴드 최고반으로 꼽는 이가 많을 만큼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보다는 득이 많은 시기였다. 너바나가 폭발하면서 시애틀은 새로운 음악 도시로 각광받았고 사운드가든도 그런지 4인방에 소속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1994년의 <Superunknown>이 발매되자마자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싱글 'Black hole sun'의 인기와 더불어 3백만장이 넘게 판매되었고 두 개의 <그래미>를 거머쥐기도 했다.

1996년에 사운드가든은 <Down on the Upside>로 돌아왔다. 전체적으로 전작의 대중적 버전이었던 앨범은 차트 2위로 등극했고 200만장이 팔리면서 변치 않는 팬층을 과시했다. 하지만 얼터너티브 씬 전체의 하락세와 더불어 사운드가든은 롤라팔루자 헤드라이너 임무를 완수한 직후인 1997년 운항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