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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9 19:30
Scritti Politti (스크리티 폴리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83  



Scritti Politti (스크리티 폴리티)

 

 
오히려 극과 극은 보통 지점에 있을 때보다 더욱 서로 잘 통한다. 대척점에 서있는 반대편으로 전향이 쉽다는 말이다. 스크리티 폴리티는 섹스 피스톨즈의 노선을 이어받아 골수 공산주의자들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러브 송을 노래하는 달콤한 팝 밴드로 탈바꿈한 그룹이다. 전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졌다.


1978년 잉글랜드 리즈의 예술 학교에서 조직된 정치 결사대 스크리티 폴리티는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그린 가트사이드(Green Gartside), 키보드를 치는 매튜 케이(Matthew Kay), 스틱을 쥐고 있는 탐 몰리(Tom Morley), 베이스를 연주하는 나일 징크스(Nial Jinks)의 라인업으로 이뤄졌다.


그룹의 핵심 인물인 가트사이드는 열 다섯 살 되던 해 기독교식으로 붙여진 퍼스트 네임을 거부하고 그린(Green)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극렬 공산당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탈리아 말로 정치적 비난이란 뜻의 그룹명도 그에 의해 붙여진 명칭이다. 'Skank bloc bologna'를 비롯한 초기 싱글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뚜렷이 나타난 포스트 펑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9년 가트사이드가 병에 걸려 잠깐의 휴지기를 거친 후 그들의 사운드는 180도 변했다. 소울, 재즈, 레게 등이 조미료로 함유된 팝으로 바뀐 것이다. 'Asylums in jerusalem', 'The sweetest girl' 등의 포스트 모던 팝들이 수록되어 있는 1982년 데뷔작 <Songs To Remember>가 웅변한다. 비록 정치적인 색채는 거의 제거되었지만, 가트사이드의 자의식 강한 가사는 여전하였다. 음반은 영국 인디펜던트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내셔널 차트에서도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집 이후 밴드를 해체한 가트사이드는 2년 뒤인 1984년 뉴욕 뮤지션들인 데이비드 감슨(David Gamson, 키보드), 프레드 메이허(Fred Maher, 드럼)와 함께 재결합하여 1985년 두 번째 음반 <Cupid & Psyche 85>, 1988년 <Provision> 을 발표했다. 신시 팝 성향으로 돌아선 두 작품은 'Word girl (flesh and blood)'(영국 차트 6위), 'Absolute'(17위), 'Wood beez (pray like aretha franklin)'(10위), 'Oh patti (don't feel sorry for loverboy)'(13위) 등의 히트곡들을 탄생시켰다.


이후 또다시 병-무슨 병인지는 모름-으로 인한 가트사이드의 요양 생활로 스크리티 폴리티는 기나긴 동면 상태에 들었다가, 1999년 힙 합을 받아들인 새 앨범 <Anomie & Bonhomie>와 함께 극적으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