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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39
Steelheart (스틸하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38  



Steelheart (스틸하트)

 

 
스틸하트는 1981년 마이클 마티예비치(Michael Matijevic, 보컬), 크리스 리졸라(Chris Risola, 기타), 프랭크 디 코스탄조(Frank Di Costanzo, 기타), 제임스 워드(James Ward, 베이스), 존 파울러(John Fowler, 드럼)의 5인 라인업으로 미국 코네티컷주 노워크(Norwalk)에서 결성되었다. 결성 당시 레드 앨러트(Red Alert)라는 밴드명을 사용했던 이들은 80년대 코네티컷의 로컬밴드로 비교적 긴 무명 시절을 보낸다.


80년대 말경 이들은 대도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데모를 들고 뛰어다닌 끝에 MCA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1990년 그룹명을 스틸하트로 개명하고 셀프타이틀의 데뷔 앨범 <Steelheart>를 발표한다. 마크 오피츠(Mark Opitz)등 유명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데뷔 앨범은 비교적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앨범은 차트 54위까지 진출했으며, 첫 싱글로 커트 된 록발라드 곡 'I'll never let you go'는 차트 1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후속 싱글인 'She's gone'도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차트 50위권에 얼굴을 내밀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의 음악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트렌드를 오차 없이 따랐다. 선배 하드록 밴드들의 기교를 충실히 구현했으며, 기타가 강조된 사운드와 날카로운 샤우트 보컬로 멜로디를 살리면서 동시대 인기를 누렸던 기타록/팝메탈 밴드들과 성향을 같이 했다. 차트 성적이 말해주듯이 당시 메탈의 흐름에서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시대 트렌드의 일개일 뿐이었다. 하지만 90년대를 살았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들은 분명 특별한 밴드였다. 'She's gone'이라는 초유의 메탈 히트 넘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본토에서 50위권 정도의 성적을 내며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이 곡은 드라마틱하고 서정적인 곡 전개와 자극적인 고음처리가 국내 팬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면서 메탈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국민팝송의 수준에 이르는 화제와 인기를 누린다.


'She's Gone'의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 스틸하트라는 그룹은 록/메탈 팬들에게 찬밥 신세였다. 당시 메탈계에서 인기를 누리던 포이즌(Poison), 워렌트(Warrant), 파이어하우스(Firehouse), 슬로터(Slaughter), 스키드로우(Skid Row)와 같은 밴드들의 이름과 비교하면 이들은 밴드로서는 분명 찬밥이었다. 미국에서도 분명 이들은 앞에 거론한 밴드들에 밀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밴드였고, 국내에서 이들의 음악에 대한 반응은 본토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실력 없는 밴드였다.


1992년 서퍼모어 앨범 <Tangled In Reins>의 상업적 실패는 이들의 음악적 가치를 깎아 먹는데 한 몫 거든다. 'Mama don't you cry'가 주목받는 듯 했지만 앨범은 차트 144위에 머무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고, 역시 앨범은 국내용 메탈 발라드 앨범 정도의 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에 심의로 인해 앨범에서 무려 다섯 곡이 삭제되었는데, 두 번째 앨범은 본토에서 음악적으로 좋은 평을 들었음에도 불구, 다섯 곡이나 잘린 핸디캡 앨범이어서 밴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이 동시대 다른 기타록/팝메탈 밴드들에 비해 쳐지는 부분은 별로 없다. 그룹의 프런트맨인 마이클의 작곡 실력은 늘 인정되어졌고, 로컬 밴드로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연주력들도 탄탄한 편이다. 속도감 있는 곡들에서 흥겨움을 이끌어 내는 것도 발라드 곡에서 극도의 애절함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훌륭하다. 어쩌면 'She's gone'의 대 성공으로 인해 국내에서 이들의 음악은 대 히트곡 앞에 묶여버린 경향이 있다.


이들은 데뷔 앨범의 히트 넘버를 후속 앨범의 음악적 성공으로 극복해내는 데 실패했다. 2집 발표 후 마이클은 큰 부상을 당했고 앨범 발표 후 활동을 접어야 하는 비운을 경험했다. 그리고 93년 정신차리고 다시 활동에 나섰지만 이미 이들의 시대는 끝난 상태였다. 너바나가 록계를 정복했고, 시대는 팝메탈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한국 팬들에게 'She's gone' 한 곡을 남기고 추억의 밴드로 사라져 버렸다.


팝메탈의 쇠락을 증명하듯 1996년 발표한 세 번째 앨범 <Wait>은 심지어 라이센스로 발매되지조차 못했고, 4년이 흐른 2000년이 되어서야 라이센스로 국내에 정식 소개되었다.

한국의 대중정서와 호흡을 같이 한 이들이 90년대 이후 TV에 출연하는 한국 로커들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밴드에 대한 평이 좋건 나쁘건 90년대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메탈 곡은 분명 'She's gon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