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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29
Spirogyra (스파이로자이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06  



Spirogyra (스파이로자이라)

 

 
스티브 힐리지와 함께 영국의 캔터베리 그룹인 에그(Egg)에서 활동하던 스티브 보릴 (Steve Borill), 줄리안 쿠색(Julian Cusack), 마틴 코커햄(Martin Cockerham)은 에그를 나오며 스티브의 주선으로 당시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던 여대생 바바라 가스킨 (Barbara Gaskin)을 영입해 1969년 10월 스파이로자이라를 결성했다.


사실 처음 이 이름으로 마틴의 곡을 공연할 당시 스파이로자이라는 훨씬 많은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였다. 그러나 사실상 많은 멤버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결국은 핵심을 이루던 4명의 멤버로 정리가 되었다.

영국 예술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캔터베리 출신의 이들은 포크 성향의 음악을 연주를 하며 활동지를 런던으로 옮겨 많은 클럽을 돌며 수많은 공연을 했다.


1970년까지 클럽 뿐 아니라 여러 대학을 순회하는 공연도 수없이 가지며 네덜란드에서 몇 차례의 투어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며 브리티쉬 포크 록 씬에서의 선구자적 역할을 시작했다.

셉템버(September) 프로덕션의 도움으로 이들은 B&C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1971년도에 데뷔 앨범 <St. Radigunds>를 발표했다.


어쿠스틱한 포크 록에 기반한 이 음반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는데 성공하며 2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이어 스파이로자이라와 함께 라이브에 참여하던 마크 프랜시스(Mark Francis)가 멤버로 합류하여 바바라 가스킨이 자신의 훼이버릿 앨범으로 꼽는 두 번째 앨범 <Old Boot Wine>이 발매됐다.


이 앨범은 마틴의 일렉트릭 기타와 데이브 매텍(Dave Mattack)의 드럼이 만드는 사운드가 강해지면서 이전의 포크 적인 느낌이 다소 감소하고 록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앨범에 이어지는 전국 투어에서 이들의 연주와 화음은 클럽과 대학에서 열광적인 팬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이름을 알리기 위해 스파이로자이라는 스티브의 밴을 타고 수백 시간을 함께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는데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를 다니며 한 주에 평균 3-4회의 공연을 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그것은 온 힘을 소진시키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2집 발표 후 줄리안과 스티브가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 스파이로자이라와 캔터베리를 떠났고, 이들 중 누구도 다음 작품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크도 팀을 떠났다. 스파이로자이라의 사운드를 담당하던 피트 볼(Pete Ball)도 TV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다.


1972년, 변해버린 환경 속에서 둘만 남은 마틴과 바바라는 새로운 세션들을 영입해 앨범을 발표했고, 그 앨범이 3집이자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된, 그들의 앨범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성을 띠고 있으며 세련된 음악을 들려주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앨범으로 꼽는- <Bells, Boots And Shambles>다.

이후 비록 둘밖에 남지 않은 밴드였지만 스파이로자이라의 공연을 계속 이어졌다. 때로는 단지 바바라와 마틴 두명이서만 공연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존 기포드(Jon Gifford) 같은 새로운 색소폰, 플루트 주자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4월 결국 밴드는 끝이 나고 말았다. 바바라는 1970년 후반 빌 부르포드와의 활동을 거쳐 1980년대에는 키보디스트 데이브 스튜어트와 함께 스튜어트 & 가스킨을 결성하여 계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했다.

또한 그녀는 영국을 떠나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녀가 여행한 국가 속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너무나 청아한 그리고 첨예한 Folk의 아름다움

 

스파이로자이라가 결성되던 1970년 당시 영국은 아트 록이 전성기에 달해 있던 때였다. 1960년대 말의 학생운동과 기성에 대한 도전의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예술학교를 다니던 젊은이들이 그때까지의 단순한 록, 재즈, 포크 음악에 안주하지 않은 채 음악적 욕심을 부풀리며 나가던 방향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진보적 방향이었다.


이런 시기에 탁월한 송라이터이자,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기교를 선보이는 보컬리스트, 자유자재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마틴 코커햄이라는 젊은이와 격정을 가라앉히는 청아한 목소리의 아름다운 여성 보컬리스트 바바라가 전면에 나서서 영국 전통의 음악에 기반한 부드러우면서도 아트 록적인 포크 사운드를 들려주는 스파이로자이라는 당시 젊은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학가와 클럽에서의 수많은 공연을 하던 스파이로자이라의 가사적 모티브는 주로 중세의 마법과 환상적인 전설이었으며, 이들의 음악은 당시 로맨틱 포크라는 평을 얻어내며 멜로우 캔들(Mellow Candle), 브레드 러브 & 드림스(Bread Love & Dreams) 등과 함께 뉴 브리티쉬 포크 무브먼트의 선두주자의 자리에 위치했다.


1960년 말 전세계를 휘감고 있던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포크 록을 추구하던 스파이로자이라의 음악의 첫 번째 매력은 아무래도 여타 트래디셔널 포크 그룹처럼 전면에 내세워진 바바라의 청아한 여성 보컬이겠지만, 마틴 코커햄의 개성 있고도 자연스러운, 극히 포크 적인 -때로는 밥 딜런을, 때로는 닐 영을 연상시키기까지 하는- 목소리와 한계를 드러내지 않는 어쿠스틱 기타, 첼로, 피아노, 바이얼린, 트럼펫, 플루트, 어쿠스틱 베이스 등 그 사용 악기들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움과 아트 록 -그렇지만 결코 재즈 적인 어프로치는 아닌- 색채, 단순함에 머물지 않는 치밀한 기승전결을 가지는 아트 록 진행, 중세의 전설과 마법에서 연상되는 주술적이고 신비스런 분위기 또한 스파이로자이라의 내츄럴하지만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음악의 매력일 것이다.

짧은 기간 안에 3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사라진 스파이로자이라의 음악에는 당시 함께 활동하던 많은 그룹들이 사용하던 실험적인 일렉트릭 사운드도 없고 휘몰아치는 키보드의 물결도 거세되어 있다. 모든 어쿠스틱 악기들이 그 모든 것을 영롱하게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타 아트 록에서 나타나는 치밀한 곡구성, 상승과 하강, 완급이 뚜렷한 전개, 다양한 리듬의 구사 등이 이들을 단순한 -혹은 심심한- 포크록 그룹으로 한정짓지 않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3장의 음반으로 20년이 넘도록 멈춰 있었지만, 시완 레코드에서는 현재 마틴과 바바라와의 접촉을 통해 내년 초에 스파이로자이라의 미발매 음원들을 담은 음반을 계획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