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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7 23:41
Stephen Duffy (스티븐 더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5  



Stephen Duffy (스티븐 더피)
 

 
"내가 몸담았던 그룹은 내가 있을 때는 그렇게 죽을 쑤더니 왜 내가 나가니까 이렇게 잘 풀리는 거야."


80년대에 스테픈 더피(Stephen Duffy)는 어쩌면 방구들을 치며 홀로 이렇게 한탄했을 지도 모른다. 스테픈 더피는 원래 듀란 듀란(Duran Duran)의 초대 보컬리스트로 음악계에 데뷔했다. 더피가 버밍엄의 예술학교 재학생인 닉 로즈, 존 테일러 그리고 사이먼 콜리라는 친구와 함께 78년도에 만들었던 그룹이 바로 듀란 듀란이었다. 80년대 중반의 듀란 듀란의 폭발적인 인기는 60년대의 비틀즈의 인기에 비견되는 수준이었지만 그룹을 박차고 나온 더피에게 있어 실상 그 같은 인기는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니 오히려 더 배만 아픈 일이었다.


만일에 더피가 듀란 듀란에 계속 있었더라면 더피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돈, 인기,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피의 듀란 듀란 재적기간은 짧았다. 더피는 그룹 결성 6개월만에 존, 닉과의 음악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사이먼 콜리와 함께 듀란 듀란을 나와버렸다. 화려한 듀란 듀란의 역사에 있어서 그는 단지 사이먼 르본이라는 제 임자를 찾아내기 이전에 갈렸던 세 사람의 선임자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될 뿐이다.


듀란 듀란이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82년, 더피는 스티븐 '틴틴' 더피라는 이름으로 첫 솔로음반을 발표했지만 앨범의 판매고는 영 신통치 않았다. 그가 인기를 얻지 못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단지 듀란 듀란을 거쳐갔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이미지가 틴 아이돌로 굳어진 데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음악 스타일이 80년대의 음악씬에서 먹혀 들어가지 못한 데 있었다. 옛날에 듀란 듀란에 있던 남자 정도로 더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틴 아이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헌데 더피가 하는 약간의 포크와 펑크가 가미된 옛날 록큰롤은 이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딱 알맞은 모양새였던 것이다. 'Kiss Me'라는 싱글 음반이 차트 3위까지 진출하며 25만장 팔린 것이 솔로 활동을 하며 그가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다.


도대체 성공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솔로 활동을 접고 더피는 87년 남동생 닉을 주축으로 라일락 타임(Lilac Time)이라는 4인조 팝/포크 그룹을 만들었다. 라일락 타임은 87년 데뷔앨범 [The Lilac Time]부터 91년 [Astronauts]까지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했지만 89년에 발표한 2집앨범 [Paradise Circus]에서 'The Girl Who Waves At Trains'가 약간의 반응을 얻었을 뿐 역시 큰 인기는 얻지 못했다. 결국 더피는 네 번째 앨범이 발매된 주에 라일락 타임의 해체를 선언하고 다시 솔로 활동에 들어갔다.


듀란 듀란을 나온 뒤에 그가 했던 일들 중에는 이러한 공식적인 캐리어 외에도 미국 밴드 어덜트 넷(Adult Net)에 잠시 적을 두었던 시절과 일본에서의 명성,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캐나다의 유명 밴드에 밴드 멤버의 이름으로 곡을 써주는 일을 했던 따위의 흥미로운 비공식적 캐리어들도 있었다. 90년대로 들어가면서 음악계의 판세는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블러(Blur), 오아시스(Oasis) 같은 옛날 풍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에 더피는 크게 고무를 받았다. 드디어 자신의 음악이 먹혀들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한 더피는 앨범작업에 착수. 95년 솔로 앨범 [Duffy]를 발표하며 솔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