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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9 21:46
Skid Row (스키드 로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75  



Skid Row (스키드 로우)
 


 
'I Remember You', '18 And Life', 'Wasted Time'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키드 로우는 1986년에 미국 뉴저지주에서 결성된 5인조 헤비메탈 밴드이다. 80년대 초에 기타리스트 데이브 세이보(일명 스네이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성장하며 절친하게 지내던 존 본 조비(Jon Bon Jovi), 데이빗 브라이언(David Bryan)등과 함께 여러 밴드를 거치며 음악적 역량을 쌓아가던 중이었다. 이들은 83년 존 본 조비 앤 더 와일드 원즈(Jon Bon Jovi & The Wild Ones)를 결성하였는데 이후 밴드명을 Bon Jovi로 개명하고 머큐리(Mercury)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데이브 세이보 대신에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로 멤버를 교체한다. 데이브의 기타솜씨가 미숙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본 조비의 세계적인 성공을 지켜보며 아쉬움이 많았던 데이브는 자신도 다시 본격적인 밴드를 결성해 재출발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86년에 우연히 뉴저지의 한 기타전문점에서 일하던 베이시스트 레이첼 볼랜(Rachel Bolan)을 만났고 자신과 함께 활동했던 드러머 롭 어푸소와 레이첼과 친분이 있던 스코티 힐을 끌어들여 밴드를 결성한다. 이때는 아직 보컬리스트가 없는 상태여서 레이첼이 주로 보컬을 맡으며 활동을 해나갔다.


그럴 즈음 우연히 그들은 어느 음반사 관계자의 결혼식장에서 캐나다 출신의 보컬리스트 세바스찬 바하(Sebastian Bach)를 만나고 오디션을 거쳐 그는 밴드의 새 멤버가 된다. 이후 스키드 로우는 세바스찬의 출중한 외모덕에 가는 곳마다 엄청난 소녀팬들에게 휩싸인다. 다른 멤버들의 용모 또한 수려해서 이들을 향한 소녀팬들의 열광은 아이돌 그룹인 뉴 키즈 온 더 블락 못지 않았고, 홈비디오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듯이 이들이 가는 곳은 몰려드는 소녀팬들로 인해 교통이 마비되거나 압사 사고가 일어나 급기야 메인 뉴스의 톱기사로 보도되기까지 한다.


87년에 스키드 로우는 본 조비의 존 본 조비와 리치 샘보라가 설립한 인세관리 회사 뉴저지 언더그라운드 뮤직(New Jersey Underground Music)사와 첫 번째 계약을 한다. 또한 데이브와 존 본 조비와의 친분 덕분에 본 조비의 [Slippery When Wet]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서 참가하는 기회도 얻는다.

88년에 애틀란틱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그해 말에 본 조비의 4집 [New Jersey]의 월드 투어에 신데렐라(Cinderella)와 함께 오프닝으로 참여했고, 본 조비의 [New Jersey 홈비디오]에 데이브가 출연해 존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듬해인 89년에는 드디어 스키드 로우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이 발매되는데, 이미 수퍼 밴드의 반열에 오른 본 조비와 함께 한 투어와 비디오 출연 등으로 그들에 대한 소문이 어느정도 무르익었던 터라 팬들의 반응은 비교적 빨랐다. 첫 싱글 'Youth Gone Wild'로서 라디오와 MTV를 서서히 공략하던 이들의 데뷔앨범은 두 번째 싱글 '18 And Life'가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급기야 세 번째 싱글 'I Remember You'마저도 차트 6위에 오르면서 앨범차트 10위권 안에 진입, 90년 초까지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금도 이 앨범은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데뷔작의 큰 성공과 더불어 스키드 로우는 90년 어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헤비메탈 최우수 신인 밴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는다. 인기가도를 달리면서 90년 한해를 정신없이 보낸 이들은 이듬해인 91년 6월에 2집 [Slave To The Grind]를 발표하는데, 발매 첫 주만에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며 '본 조비의 후광을 얻은 히트', '얼굴만 잘생긴 아이돌밴드', '반짝스타(pin-up star)'등 그들에 대한 악평을 단번에 일축시켰다.


한편 이 앨범에 수록된 'Getthefxxxout'이라는 곡이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여러 지역에서 원곡 대신 클린 버전인 'Beggar's Day'로 바뀐 채 발매되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 곡 외에 'Riot Act'라는 곡마저 삭제된 채 앨범이 발매되는 수난을 겪었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앨범에는 수록돼지 못했던 'Getthefxxxout'이 당시 국내에 함께 발매된 이들의 홈비디오 [Road Kill]에 원곡 그대로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첫 싱글 'Monkey Business'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이들의 2집은 전형적인 팝메탈을 들려주었던 1집과는 판이하게 정통 헤비메탈 밴드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발라드 또한 블루지한 색채를 띄면서 보다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앨범 판매고는 전작에 훨씬 못미쳤다.


2집 발매 이후 머틀리 크루(Motley Crue),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등과 함께 유럽을 돌며 공연을 한 이들은 92년엔 사운드가든(Soundgarden)과 판테라(Pantera)를 오프닝 밴드로 기용하여 첫 헤드라이너 투어를 가졌다.

이 무렵 인세배분 문제를 놓고 뉴저지 언더그라운드 뮤직의 설립자인 존 본 조비와 스키드 로우간에 마찰이 빚어졌는데 어느 시상식에선가 수상 소감을 밝히던 스키드 로우가 '이제 본 조비의 도움따윈 필요없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투어 도중에 간간이 녹음했던 선배 밴드들의 커버버전을 수록한 EP [B-Side Ourselves]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키스(KISS),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레이몬즈(Ramones), 러쉬(Rush) 등의 커버버전 5곡이 수록돼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 라이센스엔 1곡이 제외된 채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도 이 앨범은 절판된 상태라서 매우 희귀해진 음반 중 하나이다.


이후 세바스찬이 판테라의 멤버들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 성격으로 투어를 가지는 한편 나머지 멤버들이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자 '스키드 로우 해산설', '세바스찬 탈퇴설', '스네이크 탈퇴설' 등의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이러한 루머를 불식시킨 앨범이 바로 95년에 발매된 3집 [Subhuman Race]이다.


이 앨범을 통해 스키드 로우는 2집에서 보여준 변화의 조짐에 더욱 박차를 가함으로써 팬들을 놀라게 했다. 스키드 로우의 것이라기에는 전혀 예측 불가능했던 초강력 사운드로 무장된 이른바 '판테라'식 헤비메탈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이들 팬층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소녀팬들의 눈시울을 적셔줄 만한 파워발라드가 단 한곡도 없는 데다 당시 전반적으로 헤비메탈이 침체기였던 터라 스키드 로우의 3집은 상업적으로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나타난 스키드 로우의 음악적 성장 내지는 새로운 시도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하고 있다.


3집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내한공연을 치르기도 했던 이들은 투어공연이 마무리된 96년 말부터 세바스찬이 독자적인 활동을 개시하자 다시 한번 해산설에 휩싸인다. 사실상 이들은 이 당시에 밴드 해체를 결정했다고 한다.

98년 초에 스키드 로우가 베스트 앨범 [40 Seasons]를 발표하자 이를 놓고 국내의 몇몇 언론 매체가 '스키드 로우가 다시 돌아왔다'고 떠들어 댄 적이 있다. 이 앨범에 두 곡의 신곡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보고 지레짐작한 것이었는데 사실 이 두 곡은 예전 1,2집때 레코딩 했다가 발표를 보류됐던 곡들이었다.


이제 스키드 로우의 해체는 기정사실화 된 상태이다. 얼마전 세바스찬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밴드를 이끌고 내한, 워커힐 호텔에서 심야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나머지 멤버 4명이 새로운 밴드를 만들 계획이라는 소문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