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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9 22:55
Slash's Snakepit (슬래쉬즈 스네이크핏)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23  



Slash's Snakepit (슬래쉬즈 스네이크핏)
 

 
건즈 앤 로지즈(Guns N' Roses)의 투어를 마친 뒤 슬래쉬(Slash)는 자신의 집에 마련되어 있는 스튜디오 스네이크핏(Snakepit)으로 돌아왔다. 24트랙의 스튜디오 옆에는 길이 6미터의 비단뱀 네 마리가 들어있는 뱀 우리가 있기에 슬래쉬의 기타 테크니션인 애덤은 이 작업실을 늘 뱀구멍(snakepit)이라고 불렀다.


슬래쉬는 쉼터이며 놀이방인 이 곳에서 한두 곡씩 작곡을 했고 작품이 어느 정도 쌓이자 동료 드러머인 맷 소럼(Matt Sorum)을 불러 함께 다듬어 나갔다. 이렇게 완성된 곡의 숫자가 대략 17곡 정도. 앨범 한 장을 만들고도 남음직한 분량이다. 처음에는 이 넘버들을 Guns N' Roses용으로 사용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완성된 곡들은 모두 단순하고 격렬한 기타 톤으로 액슬이 표방하는 밴드 색깔에는 맞지 않을 듯 싶었다. 액슬이 원하는 색은 오렌지 빛이었지만 슬래쉬가 만들어 놓은 곡은 자칫 잘못 배합하면 아주 촌스럽게 보이는 코발트 블루였다.


오렌지와 코발트 블루? 너무 차이가 컸다. 한색(寒色)인 코발트 블루가 온색(溫色)인 오렌지로 변화하려면 수많은 다른 색을 첨가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본래의 색감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밴드에 대한 부담감을 잠시 접기로 한 슬래쉬는 이왕 놀이판을 벌린 것,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는 생각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 김비 클락(Gilby Clarke)도 부르고 맷과 짝궁을 이뤄 리듬을 만들어낼 인물로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베이시스트 마이크 아이네즈(Mike Inez)를 떠올렸다.


레코드를 낼 생각인데 와서 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슬래쉬의 전화를 받은 마이크는 주섬주섬 악기를 챙겨 스네이크핏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별 생각 없이 이 무리에 합류했는데 첫 번째 잼에서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곡이 좋기도 했지만 슬래쉬, 맷 그리고 길비 모두 호인(好人)이어서 더욱 정이 갔다. 스네이크핏에서 잼을 하며 호흡을 맞추던 이들은 프로페셔널한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겨 녹음에 들어갔으며 이와 함께 싱어의 오디션도 실시했다.


보컬의 오디션에는 콰이어 보이즈의 스파이크를 비롯해 마이클 먼로, 론 영, 그리고 킹즈 엑스(King's X)의 덕 피닉 등 40여 명의 유, 무명 싱어가 지원을 했는데 이 중 뱀굴에 들어올 수 있는 입장권을 받은 인물은 4인조 밴드 젤리피쉬(Jellyfish)에서 기타를 치며 간간히 보컬도 넣었던 에릭 도버(Eric Dover)였다. 스스로를 '보컬리스트가 되길 꿈꾸는 무능한 기타리스트'로 표현하는 그는 길비의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연습을 하던 중 그들에게 슬래쉬의 오디션 소식을 듣고 참가하게 되었지만 실제로 마이크를 쥐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밴드 이름을 지어야 할 과제가 남았는데 번거로운 과정을 싫어하는 성격의 슬래쉬는 그냥 작업하던 자신의 스튜디오 이름을 따 '스네이크핏'이라 명명했다. 원래는 앨범에도 자신의 이름을 달지 않고 단순히 스네이크핏으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슬래쉬의 이름이 붙어야 주목을 끌기 쉽다는 소속사 게펜의 입김이 들어가 슬래쉬스 스네이크핏으로 변경되었다.


몇 년 전 Guns N' Roses는 영국 투어를 떠나기 위해 오전 10시에 공항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밤마다 클럽에서 연주하는 이들 야행성 뮤지션에게 아침 10시는 잠자는 시간. 당연히 침대에서 잠을 즐겨야 할 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항에 나와있자니 아주 죽을 맛이었고 짜증이 난 멤버들은 모두 '접근시 발포함'이라는 경고 문구를 얼굴 표정에 드러내놓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몸도 기분도 모두 좋지 않았던 슬래쉬는 바에 가서 잭 다니엘즈와 콜라 칵테일을 주문했다. "아침 10시인 것은 알지만"이라는 양해의 말을 달아서. 그러자 바텐더는 그에게 잔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어딘가는 지금 5시겠지요." 슬래쉬는 그 말을 깊이 담아두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지만 업무를 다 끝낸 뒤 여유롭게 술 한 잔을 즐기는 저녁 5시같은 시간이 언젠가는 오리라. 이후 이 말은 슬래쉬의 모토가 되었고 솔로 프로젝트의 앨범 제목([It's Five O'clock Somewhere])으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