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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9 22:55
Slaughter (슬러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52  



Slaughter (슬러터)

 

 
메탈 팬이 아니면 다소 그 이름이 생소할 수도 있는 슬로터는 파이어하우스(Firehouse)와 함께 1990년대 초반 록 필드를 환호와 탄성으로 휘저었던 그룹이다. 그들의 데뷔 앨범 <Stick It To Ya>는 3백만 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고, 'Up all night'와 'Fly to the angels'는 차트 상위권에 머물며 음반의 성공을 이끄는 쌍두마차 싱글이 되었다. 마크 슬로터(Mark Slaugther)는 매혹적인 팔세토 창법의 소유자로 밴드의 인기를 견인했다.


슬로터의 저력은 1992년의 <The Wild Life>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상업적으로 전작만큼 놀라운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베벌리힐스 아이들>의 스타 새넌 도허티(Shannen Doherty)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Real love'와 국내에서도 애청되는 이들 최고의 발라드 'Days gone by'는 바래지 않은 멜로디를 품고 있었다. 리더 마크 슬로터는 블라스 엘리아스(Blas Elias)와 같이 전곡을 만들고 프로듀스하며 곡들 하나 하나의 매력을 끌어내는데 역점을 두었다. 얼터너티브 록이 메탈의 파수꾼들과 마지막 전투를 벌이던 과도기에 이들의 분전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1988년 결성되어 대 선배 그룹 키스(Kiss)의 서포팅 밴드로 기회를 엿보던 슬로터는 LA 지역 그룹들의 음악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원하던 스타덤에 등극했다. 처녀작의 약진으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헤비메탈 부문 신인상을 거머쥔 이들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주무기로 새 입맛에 길들여지려 하는 팬들에게도 상당히 어필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후로 매력적인 곡을 만드는 감각이 갑작스레 둔해진 이들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정규 앨범 두 장 다음에 '베스트' 음반을 발표하는 '농간'을 저질렀다. 레코드 회사를 <크리샐리스>에서 <CMC>로 옮기게 된 이들은 <Fear No Evil>, <Revolution>등 계속해서 앨범을 공개하며 팬들의 의중을 떠보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마약 중독에 시달리던 기타리스트 팀 켈리(Tim Kelly)의 죽음은 그룹의 암울한 상황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든 요인이었다. 1998년 2월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영전에 슬로터는 <Eternal Life>를 헌정 했다. 밴드에서 보여준 깔끔한 연주뿐만 아니라 보이즈 투 멘(Boyz Ⅱ Men)의 앨범에서 세션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과외 활동으로도 인정받았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고심 끝에 슬로터는 팀 켈리 없이 밴드를 꾸려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들이 퇴물 이상의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비대해진 헤비메탈계에서 잉태된 슬로터는 자신들의 부상과 씬의 침강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목도하며 당황스러움을 느껴야 했던 그룹이다. 그 이중적인 구조 사이에서 이들은 갈등했고,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선을 빚으며 짧은 전성기를 마감했다.